[칼럼] 청보(淸譜)인가 탁보(濁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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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규 목사(시카고 한마음재림교회)

 

얼마 전 족보에 관하여 흥미로운 내용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족보에는 청보(淸譜)와 탁보(濁譜)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청보는 그 내용이 사실적인 족보이고, 탁보는 과장되고 거짓이 많은 족보, 즉 가짜 족보를 말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는 고려 18대 의종(毅宗)때 김관의가 작성한 고려 왕실의 계보도인 ‘왕대종족기'(王代宗族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 백성으로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족보를 만든 것은 안동(安東) 권씨(權氏)의 ‘성화보'(成化譜)가 최초인데 성화보는 조선 성종(成宗) 때인 1476년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많은 성씨의 족보들이 한국 최초의 족보라고 하는 안동 권씨의 ‘성화보’보다 앞선 것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대부분의 족보가 청보가 아니라 탁보라는 의미입니다. 집안의 족보가 청보인지 탁보인지를 확인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족보에 나타난 관직(官職), 생몰(生沒)연대, 부인의 이름, 묘소 등을 살펴보면 기재 사실의 진실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고려시대의 관직명(官職名), 품계명(品階名), 작위명(爵位名)을 신라 때의 조상에게 붙이는 경우와 같은 것입니다. 조상이 신라 조정에서 벼슬을 했다고 하면서 간의대부(諫議大夫), 평장사(平章事), 문하시중(門下侍中) 같은 고려시대의 관직명을 붙여 놓은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탁보, 즉 가짜 족보인 것입니다. 특히 18세기 이후 조선 숙종에서 영조시대에 이런 탁보가 많이 등장했고 각 성씨의 족보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거짓 족보들이 만들어졌을까요? 그것은 족보를 거짓으로라도 만들어서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 설령 어는 성씨 어느 문중의 무슨 파에 속했는지 등등 우리 집안의 족보를 훤히 꿰고 있지는 못할 지라도 내가 양반 집안이요, 조상 가운데 역사에 기록될 만한 훌륭한 인물의 후손이라 불리고 싶은 마음이야 모두 같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세상이 변하여 신분의 귀천이 따로 없는 시대이지만 그래도 한국인의 정서에 양반의 후손이 아니라 노비의 자손이라고 하면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는 어떠합니까?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인물들을 보면 모두가 훌륭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족보에 올릴 것이 아니라 족보에서 이름을 파 버려야 할 만한 인물들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아버지와 동침하여 아들을 이었던 다말, 신분이 기생 출신이었던 라합, 이방 사람이었던 룻, 나라를 영적으로 타락시키고 왕조를 몰락하게 했던 르호보암, 아비야, 아사 그리고 므낫세 등등의 인물들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족보는 기생과 망나니의 족보입니다. 여러분이라면 나의 조상이 기생이요, 이방인이요, 망나니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 1:16) 마태복음에 기록된 족보에 ‘…를 낳고’라는 표현은 말 그대로 사람이 아이를 낳았다는 능동태의 표현이었지만 마지막 ‘예수가 나시니라’는 수동태의 표현으로 마리아가 낳은 것이 아니라 마리아가 낳게 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체가 마리아가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 동사의 주어는 분명 예수 자신이 되는 것이며 그분이 기생과 망나니의 족보를 가진 집안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거기다가 이제 다윗 왕조는 완전히 몰락하여 나사렛 이라는 초라한 동네에 목수라는 천한 직업을 가진 그 가정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이제 곧 그분의 탄생을 기념하는 때가 다가옵니다. 오늘 이 시간 그분의 족보를 묵상해 보면서 하늘 왕의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비천한 집안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사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빌 2:7)던 그분의 겸손함과 낮아짐의 사랑을 마음에 간직해 보심이 어떠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