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춤과 울음이 있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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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 (선한 이웃 교회 담임/ 미 육군 군목)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  마태복음 11: 16-17

 

“왜 변화해야 되죠?” “전 변하는 걸 싫어해요!” 설교를 듣고난후 당돌하게 대답하던 한 청년의 말에 아주 당황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때를 따라 열매를 맺게하신다는 확신이 있기에, 언젠가는 그 청년의 영혼의 밭에 떨어진 말씀의 씨앗이 그 곳에서 자라나고 열매를 맺어 그가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계절을 맞이하리라는 소망을 가져보았습니다. 마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의 선포앞에 아무런 응답도 없던 “무관심의 세대” (“Age of indifference”)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장터의 거리에서 결혼식과 장례식 놀이를 하며 다투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과 같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춰야할 결혼식 놀이에 춤추지 않았고, 장례식 놀이의 슬픈 음악에 가슴을 치며 울지도 않했노라고 서로에 대해 따지는 것입니다.  이렇듯 “서로를 향해 반응이 없는 세대,” “무관심을 오히려 미덕 (the virtue of not caring)으로 여기는 세대,” “나에게도 남에게도 신경을 끊어 달라고 소리치는 세대,”… 이런 모습들이 아마도 오늘의 세대를 표현하는 단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시장에서 결혼과 장례 놀이를 하던 어린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신 비유의 말씀은 “이 세대”의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과 불신앙을 고발하신 것입니다.

 

무관심한 세대의 깊은 정신속에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저항(抵抗)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맘속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누구의 간섭도 받고싶지 않은 것과, 불편한 변화를 촉구하는 어떤한 요구에도 거부할 명분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불같이 토해내던 분은 세례요한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세대는 요한에 대해 마치 귀신들린 미친자의 외침처럼 그를 취급하였습니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마11:18) 누군가를 거부하고 그를 매도할 때 사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를 사악한 존재로 바꿔버리는 것, 곧 그를 “Demonized” 하여 폐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을 향한 불편한 진실에 대해 언제나 핑게거리를 찾아내고, 자신을 정당화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선 이같이 말하였습니다: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곧, 예수는 공동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자요, 마땅히 돌에 맞아 죽여야할 인간으로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21:20&21) 이같은 사람들의 맘속에는 무엇이 숨어있었던 것일까요? 무관심을 넘어 살의(殺意)로 가득한 맘을 품고 그들이 저항한 이유는 무엇였을까요? 그것은 변화에 대한 완강한 거부 때문였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멧세지의 중심엔 변화에 대한 촉구가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마3:2,7,10) 공생애를 막 시작한 예수님의 첫 일성도 역시 세례 요한과 동일한 것이 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1:15) 바로, 천국은 회개에서 시작되며, 변화란 하나님 자녀된 모든 성도의 간증입니다.

 

한국 교회의 부흥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춤과 울음”이 충만했던 역사였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암울한 시기를 지나면서도, 성도들은 삶의 수고와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며, 통열한 회개의 울음과 감격어린 소망과 기쁨의 춤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세계에 흩어진 한인 디아스포라속에서도 끊임없이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한 이유도 이같은 신앙의 춤과 회개의 울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 무관심과 불신앙의 도전이 팽배한 세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시대일수록 세대를 뛰어 넘어 여전히 우리를 초청하고 계신 주님의 간절한 부르심의 음성에 귀를 귀울여야 하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29)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