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크리스천의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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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 시카고 기쁨의 교회

코카콜라 회사가 콜라를 세계 곳곳에 팔기 위해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로 생각하는 대상이 누구일까? 펩시콜라에서 만드는 콜라일까, 아니면 스타벅스의 커피일까? 모두 아니다. 코카콜라 회사가 생각하는 경쟁상대는 “물”이다. 어디에서도 마시고 이용할 수 있는 물을 코카콜라의 강력한 경쟁상대라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신용카드 회사가 생각하는 경쟁상대는 누구일까? 비자 카드회사는 마스터 카드회사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회사일까? 아니다. 이 모든 신용카드회사의 경쟁상태는 현찰(Cash)이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시대는 경쟁의 경쟁을 한다. 음료수 회사는 물과 경쟁하고, 신용카드 회사는 현찰과 경쟁을 한다. 우리는 각자의 경쟁상대를 놓고 매일 매 순간 경쟁심을 불태운다.

성경도 믿음의 삶에 대한 경주를 이야기한다. 히브리서 12장 1절에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라”고 전한다. 믿음의 경주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크리스천들은 경쟁시대 속에서 어떤 건강한 경주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먼저는 경쟁자가 아니라, 예수를 바라보고 경주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빈무덤에서 천사를 통해 예수 부활 소식을 듣고 그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한다. 그러나 베드로와 예수가 사랑하던 제자가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달리기 경쟁을 한다. 그런데 달리기 경쟁에서는 예수를 사랑하던 제자가 앞서서 먼저 무덤에 온다. 그러나 그는 두려움이 많아서인지 무덤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한다.

때마침 달리기 경쟁에서 진 베드로가 두려움에 빠져 무덤 밖에서 서성이는 제자를 보고, ‘달리기에서는 졌지만 무덤에는 내가 먼저 들어가겠다’는 경쟁심으로 불쑥 무덤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서로 경쟁하던 두 제자는 끝내 부활한 예수를 보지 못한다.

한참 후에 달리기와 담대함의 경쟁에서 두 제자에게 한참 뒤진 막달라 마리아가 뒤늦게 빈무덤에 왔을 때, 부활한 예수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왜 부활한 예수는 서로 보겠다고 경쟁했던 두 제자에게는 나타나지 않으시고 경쟁에 끼지도 못했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났을까?

요한복음의 기자는 바로 경쟁이 믿음과 영성을 진보시키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진정한 믿는 자들의 경주는 예수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경주이지, 경쟁자를 바라보며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증거한다. 믿는 자는 경쟁자가 아니라,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달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믿는 자들은 피하고 도망치는 경주가 아니라 맞서 싸워 앞으로 나아가는 경주를 해야 한다.

리더십 훈련 가운데, 산정상까지 일직선으로 등반하는 훈련이 있다. 장애물이나 어려운 코스가 나와도 샛길이나 다른 길로 가서는 안 된다. 오직 정상을 향해 일직선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 훈련 중에는 함정도 만나고 절벽도 만난다. 때론 산짐승도 만나고 늪지대도 만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만 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의 길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돌아가거나 피해 갈 수 없다. 믿음의 경주는 어떤 장애와 고난의 순간이 와도 앞으로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경주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2장 11절에서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고 말한다. 곧 신앙의 여정 속에 함정과 절벽과 같은 것이 때로는 하나님의 징계와 꾸지람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을 연단과 훈련으로 삼고 이겨내어 인내하면,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된다고 성경은 약속한다.

크리스천은 믿음의 경주자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경주를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경쟁자가 아니라, 예수만을 보고 달려야 하고, 어떤 어려움과 장벽에도 이겨내고 주님이 허락한 길을 꿋꿋이 걸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믿음의 경주에서 매일 매일 승리하는 삶을 살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