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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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붉은 석양 빛이 저 멀리 강둑 너머를 가득 메우는 듯 하더니 이내 땅거미가 내려 앉습니다. 어머니가 시골집 대문을 활짝 열고는 바깥을 내다보며 고개를 기웃거리십니다. “어머니 뭐 하세요? 빨리 들어와서 저녁 드세요.” “아니, 먼저 먹어라. 우리 완행이가 들어 올 때가 됐는데…” 제가 태어나고 자란 강원도 시골집에는 염소들이 있었습니다. 숫 놈 한 마리와 암 놈 두 마리로 시작해서 이내 쉰 두 마리로 불어난 염소들. 제법 마당을 가득 채울 만큼 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침이 되면 염소들을 몰고 강변 둑방 길을 따라 풀을 뜯기러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저녁 노을이 질 시간이 되면 염소들을 몰아 다시 집으로 돌아 오셨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수십 번, 이제는 아침에 우리의 문을 열기만 하면 알아서 강변으로 나갔다가 저녁 노을이 지는 시간이면 알아서 집으로 돌아오도록 훈련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쉰 두 마리의 염소들 가운데 꼭 한 마리가 늘 어머니의 마음을 쓰이게 했습니다. 그 녀석의 별명은 ‘완행이’ 였습니다. 모든 염소들이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녀석은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오는지 항상 늦게 돌아왔습니다. 다른 염소들이 우리 안에 다 들어가고도 한참이 지나야 저 멀리 둑방 너머에서 터덜 터덜 걸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완행이는 혼자 뒤쳐져서 제 놀고 싶은 것 다 놀고 나서 초저녁이 한참 지나서야 집 마당으로 들어섭니다. “우리 완행이 이제 왔구나” “어머니도 참! 완행이가 언제 안 들어 온 적 있나요.” “그래도 이 녀석이 들어와야 내 마음이 편해” 그렇게 매일 저녁 ‘완행이’를 기다리는 어머니 처럼 집을 떠난 자식이 길을 잃고 헤매며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집에서 편히 누워 잠을 잘 수 있는 부모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 15:20) 그 날도 아버지는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혹여 돌아올까 애타는 마음으로 아들이 떠나간 그 먼 산 고개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날도 아들이 돌아 오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나의 자녀가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 방황하며 하늘 집으로 가는 길에 함께 하고 있지 않다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심정일까요.

그런데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진 부모님들이 계실 것입니다. “저희 자녀들을 위해 매일 같이 기도하는데 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하지 못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목사님의 말씀 중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빌리그래함전도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왜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 완고했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여러분의 기도와 가까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상황을 바꾸어 놓으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말하기를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 여러분의 기도가 여러분의 기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셔서가 아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기도하는 그 대상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보다 그를 더 염려한다는 것을 믿고 절망에 굴복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를 도우실 것이다”라고 강조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앙을 떠나려 하는 탕자를 억지로 돌이키실 수는 없으셨 듯이 우리도 우리 자녀들의 마음과 신앙을 강제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딤전2:4)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심지어 부모 된 우리 보다도 더 간절히 떠나간 자녀들이 돌아오기를 마음 졸이며 기다리시는 분이 우리 하늘 아버지시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먼 산을 바라보며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등 뒤에서 더 애타는 마음으로 그 산 너머를 바라보고 계시는 하늘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