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나님의 형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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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횃불트리니티 총장 어시스턴트/횃불재단 DMIN 스태프)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했기에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지만 이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었다.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임재가 필요하다. 하나님이 아담과 같이 계셔야 하나님의 형상이 유지될 수 있다. 이는 마치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과 같다. 포도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썩지 않고 싱싱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떠나셨다. 아니 사실은 아담이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갔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하나님 이제 당신이 필요 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형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이 되고 싶습니다.’ 이렇게 선언했다.

풀이 싱싱하기 위해서는 태양으로부터 햇빛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어떻게 되겠는가? 풀이 풀 같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본체로부터 끊어지니, 그 형상이 훼손되었다. 훼손되었다는 말은 형상이 없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형상은 그대로 있다. 하지만 망가진 형상이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가 실수로 피카소의 걸작에 붓으로 장난을 쳤다고 가정하자. 이 그림은 어떤 그림이 되는가? 여전히 피카소의 그림이다. 하지만 훼손된 그림이다. 피카소의 그림이긴 하지만, 원래의 것처럼 빛나지 않다. 그림의 값어치가 떨어진다.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이 이와 같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의 상태가 이와 같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다. 인자, 자비, 사랑, 인내, 온유, 지혜, 지식 등, 하나님의 성품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성품 속에는 독이 들어 있다. 누군가 목이 말아서 우물 속에서 시원한 물을 떠서 마셨다. 갈증이 속히 해소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금 후에 죽는다. 누군가가 그 깨끗하고 맑은 우물 속에 독을 한 방울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거듭나지 않은 모든 인간이 행하는 선한 일이 이와 같다. 경건의 모양은 있다. 깨끗해 보이고 맑아 보인다. 마시면 시원한 물이다. 그러나 경건의 능력이 없다. 조금 후에 그 물을 마신 사람은 죽는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셨다. 예수님이 둘째 아담이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전 15:45-49).

예수님이 누구인가? 둘째 아담, 또는 마지막 아담이다. 첫째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했지만, 둘째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고쳐주셨다. 우리는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 그런데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회복할 수 있다.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야 원래 하나님의 형상이 된다. 예수님의 형상이 되는 것이 구원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이다. 예배의 목적이다.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