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호도가 빠진 호도과자

287

이상기 목사(선한 이웃교회 담임/미육군 채플린)

 

“순진하긴(?) 그럼 호도과자에 호도가 들어간줄 아세요? 붕어빵에 붕어가 들어간 것, 어디 본 적 있어요?”  장사하는 사람이 이정도라면 막가자는 거지요? 적반하장(賊反荷杖)입니다. 참 양심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호도 없는 호도과자’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오늘 예수가없는 예수교에 빠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무척이나 많다는 것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이렇게 열심으로 교회생활하는 사람들 봤어요?” 맞습니다. 그렇지만 교인이 된다고 하는 것과 크리스챤이 된다는 것은 별개의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이란 교회교(敎會敎)를 믿는게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기독교(基督敎)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엔 예수와는 전혀 상관없는 신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관한 비유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성도들을 양과 염소로 구분하여 당신의 좌우편에 세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 있는 양과 염소는 서로 비슷비슷하게 생겨 구별이 어려워 오직 목자들만이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듯 마지막날에 인생의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비슷비슷하게 생긴 양과 염소를 구분한다는 것입니다. 오른편엔 예수님을 제대로 믿은 양떼들을, 왼편엔 헛되이 믿은 사람들로 나눈다 합니다. 헛되이 예수를 믿은 사람들의 항변을 들어보셨나요?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너희는 내가 주릴 때, 목마를 때, 나그네 되었을 때, 헐벗었을 때, 병들고 옥에 갇혔을 때’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영접하지도, 그리고 찾아오지도 않았다고 하십니다. 그들의 대답하길, ‘본적도, 만나적도 없는 당신을 우리가 어찌 그렇게 취급했다는 겁니까? 억울합니다’고 하소연 합니다. 주님은 이같이 대답하십니다: “이 지극히 작은 자(the least)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마25:45) 사실 우리의 삶이란 자기일에 정신이 팔려 주변을 돌아본다든 지, 힘든이들의 눈빛속에 숨겨진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만한 여유도 영감도 없이 지냅니다. 참으로 현대인들에겐 이웃에 대한 “무관심의 병”(the disease of indifference to others)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불행히도 그같은 병은 고통당하는 이웃과 함께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도록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만드는 무서운 질병인 것입니다.

 

지난주 CNN에선 북한의 인권실상을 알리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인권의 사각지대인 양심수들을 가둔 북한의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소개하길, 그곳에 갇힌 양심수들은 마치 “걸어다니는 뼈다귀들,” “난장이,” “절뚝발이”와 같다고 표현합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노동에 지치고, 폭력에 시달린 이들의 처참한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곳엔 기독교를 믿는 이유로 잡혀온 양심수가 5만여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같은 소식을 접하며 우리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믿음의 지체인 북한의 동포들을 생각하며 눈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성경엔 “하나님의 성전이 강도의 굴혈(den of thieves) 되었다”는 예수님의 탄식소리가 쓰여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수많은 장사꾼들만이 성전을 가득 메우고 있었던 겁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장사하면서, 순진하게 “기도하는 집”(the House of Prayer)에 기도하기 위해 찾아온  수많은 “작은 자들”(the least)의 영혼을 짖밟아 버렸던 것입니다. 이 성전을 모독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오직 채찍뿐이 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거룩한 분노가 막대기를 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이야 말로 교회일에만 바쁜 교인이 아닌, 예수 잘 믿는 참된 성도로 살아야할 시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호도과자에 호도가 어디있냐고 뻔뻔스럽게 사기치는 장사꾼들처럼, 예수교에 예수있는 것 봤냐고 조롱하는 이들이 늘어날까 참 두렵습니다. servant.s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