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흩어진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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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 기쁨의 교회)

 

기독교에서 ‘나그네’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이후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곧 이스라엘 백성도 애굽에서는 나그네였고, 출애굽이후 광야의 삶에서도 나그네처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해 가게 됨으로 신앙의 여정과 나그네의 삶이 연결되어졌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나그네를 대하는 태도 속에 신앙이 표현되게 하셨다. 출애굽기 22장 21절에서는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고 말씀하셨고, 레위기 25장 23절에서는 “토지를 여구히 팔지 말 것은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나그네)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하시면서, 나그네의 신앙을 깨닫게 해 주신다.

그런 신앙은 사도 베드로에게도 이어진다. 그는 그의 책 베드로전서에서 ‘흩어진 나그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신구약의 관통하는 나그네 신앙은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며 우리는 천국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로서 나그네처럼 주님이 허락하신 이 세상의 여정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베드로전서 1장 1-2절에 나오는 ‘흩어진 나그네’라는 표현도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에는 또 다른 한 가지의 의미를 품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방인 그리스도인 또는 비정통 그리스도인, 비주류 그리스도인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1절에서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의 지역을 이야기하면서 그 지역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보낸다고 서두에 밝힌다. 바로 여기서 유다와 예루살렘이 아닌 이방 지역에서, 할레를 받지 못한 무할레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따져 보면, 200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도 베드로가 지칭한 ‘흩어진 나그네’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장 3절에서 흩어진 나그네와 같은 자들이 ‘산소망 되신 예수를 바라본다’고 증거한다. 흩어진 나그네는 영적으로 정착지가 없고 중심도 없으며 신앙적인 유산이나 배경도 없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신앙적으로 배경과 중심이 없다고 나그네처럼 흩어지고 방황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오직 산소망되신 예수를 붙든다면 그들이 도리어 진짜 중심이 되고 참된 영적 유산을 받은 자들이 될 것이라는 증거이다.

흩어진 나그네와 같은 신앙인들은 교회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리기가 힘들다. 도리어 정통 신앙인이라고 불리는 모태신앙인들이 부럽기만 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구분을 하지 않으신다. 도리어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산소망의 예수를 선포하며, 오직 예수를 통해 더욱 굳건한 믿음을 권면한다. 예수를 붙들고 예수만을 바라본다면, 흩어진 나그네도 주님의 중심에 있는 신실하고 충성된 하나님의 종이 될 것이며 늘 은혜와 권능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것이다.

한국에 어느 교회에 갔더니, 교회 안에 진골과 성골, 6두품, 평민으로 성도의 구성을 나눈 것을 보았다. 도대체 교회가 왜 세상의 색깔을 좇아가 서로를 구분하고 차별해야 하는가? 교회 안에 모든 구성원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주님의 일군일 뿐이다. 도리어 하나님은 흩어진 나그네와 같은 자들에게 산 소망되신 예수그리스도를 허락하시고, 이를 통해 더욱 신실한 신앙의 삶을 기대하신다.

흩어진 나그네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이여! 산 소망되신 예수를 붙들자. 예수로 중심을 삼고 오직 예수로 기초를 만들자. 그런 신앙의 삶이 믿음의 반석으로 세워져 반드시 하나님 나라의 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