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05년 북한에게 가해졌던 BDA식 제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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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시카고 평통 북한인권위원장)

 

박근혜 대통령이 6자 회담 유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강력한 대북 압박으로 정책 변화를 시사했다. 박대통령은 최근 외교부 국방부 통일부의 새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6자 회담만이 아니라 북한을 제외한 5자 회담을 시도하는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접근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중국은 이번에야말로 북한이 이란처럼 국제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효과 있는 조치를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대통령이 제시한 6자 회담 유용성 의문 제기는 당연한 것이다. 중국이 주도한 6자 회담은 북한 핵무장을 위한 시간과 자금을 벌어준 국제적 쇼였다. 6자 회담이 시작된 2003년 8월27일부터 중단된 2007년 7월20일까지 여섯 차례 회담이 있었다. 북한은 6자 회담 시작 무렵 핵무기 능력을 의심받는 수준이었지만 6자 회담 기간인 2006년 10월9일 핵실험에 성공했고 6자 회담 이후인 2009년 5월25일 2차 핵실험에 나섰다. 중국은 북한의 핵 무장을 말리는 척해왔을 뿐이다. 도발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북한의 도발도 사전에 막지 못했고 사후에 제재도 하지 않았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에 대해 중국은 양비론입장을 견지해 왔다. 지뢰도발 관련,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는 8월21일 “남북 다 자제하길 바란다. 대립하지 말고 대화를 통해 분쟁을 풀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국은 북한의 한 해 식량 부족분의 절반인 30만t 정도와 원유 소비량의 절반 50만t 정도, 한국 돈 5,000억 원 가량의 물품을 지원해 왔었다. 중유·식량 지원 이외 무역을 통한 간접 지원도 있다. (비록 북한이 만성적자 상태지만) 북. 중교역은 남.북교역의 1.5배에 달한다. 북한 핵실험과 각종 도발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대북지원의 큰 틀을 유지해왔다. 통계와 경험은 이렇다. 중국이란 지렛대는 북한에 심리적 압박이 될지는 몰라도 핵 폐기와 도발방지 나아가 개혁·개방을 통한 북한의 정상화, 민주화, 자유화를 이끌어 내는 데 한계가 따른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 외교부는 박대통령의 5자 회담 제안에 대해서 “조속히 6자 회담을 재개해야 한다”며 즉각 거부 의사를 밝혔다. 북핵 공조에서 한국과 중국이 다른 입장에 서 있다는 사실이 재차 확인된 것이다.

대북제재 이행법안 H.R. 757및 강력한 대북제재를 통하지 않고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요원한 상태다. 유감스럽게도 최근, 외교안보 부처 업무보고에는 새로운 압박은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가다간 북핵은 수년 뒤 소형화, 완성될 것이고 한국은 북한의 정치적 인질로 전락할 것이다. 그 시작은 퍼주기요, 중간은 6·15와 10·4방식의 낮은 단계 연방제, 마지막은 고려연방제다. 이제라도 대북제제법안 HR 757의 강력한 상원통과를 시작으로 북한의 김정은 정권의 통치자금을 근본적으로 흔들어야 한다.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 또한 동시에 가동돼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가 단결하여 과거 BDA식 대북제제인, 북한의 무기 거래와 위조지폐의 유통을 포함한 불법적인 활동에 대해 철저한 제재를 해야 한다. BDA는 마카오에 있는 ‘방코 델타 아시아’라는 이름의 은행이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제정한 ‘애국법 311조’에 근거해 2005년 9월 BDA를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하였다. 바로 다음 날, 이 은행에서는 4천만 달러 이상의 돈이 인출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예금주들이 BDA가 망할 것을 우려해 서둘러 돈을 찾았기 때문이다.

BDA를 상대로 한 미국의 행정 조치는 즉각적으로 마카오 금융 당국을 움직이게 했었다. 북한 소유의 2천5백만 달러가 들어 있던 BDA의 은행계좌를 동결한 것이다. 마카오 금융 당국이 나선 것은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BDA와 거래를 중단하자 전 세계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이 BDA와의 거래를 회피했기 때문이다. 북한에게 그 여파는 가히 충격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