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4개의 더러운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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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권 목사/크로스포인트교회 담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단어는 딱 잘라 정의하기 어려운 말 중의 하나입니다.  학문적으로 사람은 기본적인 세 가지 요소를 가지면 행복해 진다고 정의 하고 있는데, 의미 있는 사회적 관계를 갖고, 하루를 살아가면서 원하는 것들을 부담 없이 살 수 있으며, 자신의 결정을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으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요소 외에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부자가 되고, 많은 일을 성취한 것에 대한 연구도 포함해야 한다고 말 합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3년 반 동안 따라 다니던 12명의 제자들은 행복한 사람들이였을 것입니다. 가는 곳 마다 발길 닿는 곳 마다 수많은 사람들과 긍정적이든 부정적 이든 관계를 맺고, 존재와 상상을 넘어 원하는 것들을 다 가질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모든 결정을 그룹 안에서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부가 대부분인 행복한 12명의 이름 없던 시골 촌뜨기들이 그리스도와 마지막 유월절을 보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도착한 날은 여느 때와는 확연히 다른 공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새끼 나귀를 구해오라 하여 타고 입성하는 모습도 전엔 본 적이 없고,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어 인산인해로 빽빽하게 거리에 늘어서서 종려나무가지를 들거나 겉옷을 땅에 깔 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다윗의 자손이여!!” 외쳐대는 광경도 처음 접했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종일토록 이어진 ‘디베이트’에서 K.O. 승을 거둔 통쾌함을 뒤로하고 미리 예약한 방으로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해 모였습니다. 개선장군처럼 잔뜩 흥분한 제자들. 방에 도착하자 하늘나라에서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지를 가늠하는 말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유대인의 관습대로라면 당연히 누군가가 일행의 발을 씻기고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그 날은 아무도 그 관습을 따르려고 하는 사람은 없고 말싸움만 계속하고 있었으니… 만일 그 때 발을 씻기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동료들 중에 가장 덜떨어진 얼간이가 될 듯 한 분위기입니다. 식사가 시작 될 때까지 자원하는 사람이 없자 식사 중 스승인 예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제자들의 더러운 24개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세족식’이 시작된 것입니다.  앉은 순서대로 차례가 된 베드로가 베드로답게, “주여 주께서 내발을 씻기시나이까?” 물으며 발 담그기를 거부합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부르며 자신의 신체 중에서 가장 낮은 부분 “발”은 씻기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엉겁결에 무슨 말을 했는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께서 목욕과 발을 씻는 관계를 설명하시자 이번에는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고 또 한발 더 앞서 나갔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었던 요한은 후에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기록했습니다.  “끝”까지 사랑했다는 말은 무제한이며 무한정이고 무조건적이며 무한책임으로 계속 사랑했다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는 새 계명을 선포하셨습니다. 새 계명이라 함은 엣 계명이 있었고, 그 계명을 능가하는 효력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24개의 더러운 발을 씻기신 사랑의 모델 예수 그리스도, 그가 본을 보인 사랑의 새 계명이 오늘도 세상을 바꿔가고 있습니다. 빛처럼 소금처럼 조용히 세차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