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I AM

372

이상기 목사 (선한 이웃 교회 담임/ 미 육군 군목)

캘리포니아 지역의 엄청난 산불사태를 일컫어 캘파이어(CAL FIRE)로 부르는 것을 신문에서 보게됩니다. 뜨겁고 건조한 날씨와 세찬 바람과 함께, 이번 산불에 하늘로부터 약 “만 이천번” 이상의 벼락이 산야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제 그 불길은 엄청난 화염과 검은 먼지를 동반한 불기둥이 되어 화이어토네이도(Fire Tornado)를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티비의 뉴스화면에서 보니, 거대한 나무의 움푹파인 밑둥속에서 마치 불길이 춤추듯 살아있어, 속에서부터 나무를 통째로 삼키며 태오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같은 화이어스톰과 같은 불길은 아니겠지만, 성경엔 모세가 양들을 치던 미디안 광야에 불이붙어 활활 타고있는 가시떨기나무(the burning bush)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출3:1-15)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시떨기나무에 불은 타고 이는데, 그 나무는 태우고 있지 않는 아주 신비한 광경이었습니다. (the bush was on fire but was not consumed.) 그것은 양떼를 치던 모세가 그 광경을 목도하곤 그가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는 계기가 됩니다. 아니, 그것은 이스라엘역사의 운명을 뒤돌리게한 사건의 첫 단추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가 뒤돌아 마주하게된 “불붙는 가시떨기나무”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 때문였습니다. 바로 그가 나이 80에 양을 치는 목자의 삶을 접고 미디안을 떠나, 노예되어 살고있는 동족의 구원을 위해 애굽으로 향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유대랍비들의 가르침을 담은 미드라쉬에는 이같은 모세와 버닝부쉬 이야기를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붙는 가시나무 사건 이전부터 모세를 부르고 계셨다. 문제는 모세가 그가 가진 수많은 다른 일들에 마음이 뺏았겨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같은 모세의 시선을 잡기위해 그의 앞에 불에 붙은 가시나무를 세워놓으셨던 것이다.” 우리들의 삶에도 이같은 “버닝부쉬 경험”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걷던 인생의 방향을 선회하게 만드는 특별한 경험들입니다. 이같은 버닝부쉬의 경험은 “나의 관심”에서 “하나님의 관심”으로 인생목표를 바꾸게 만들어 줍니다. 이젠 “나의 힘”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삶의 자세가 나의 기분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더 큰 하나님의 그림을 보며 걷도록 만들어 줍니다. 바로 이같은 모세의 버닝부쉬의 경험은 그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통로가 되게 하였습니다. 무엇을 해도 쉽지않았을 팔십노인의 모세에게 이같은 경험은 오직 주님의 지팡이 하나만을 의지하여, 제국의 군왕인 바로와 당당히 맞설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미드라쉬의 또다른 해석을 보니, 불붙은 가시 떨기나무가 타지 않았던 사건은 곧, 애굽의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키고 있는 장면이라고 설명해줍니다. 마치 불길처럼 타오론 애굽의 극한 폭정속에서도 결코 이스라엘을 진멸할 수없는 하나님의 보호를 상징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또 어떤 해석에는 “가시 떨기나무”처럼 들판에 자라는 흔하디 흔한 나무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듯, 하나님은 이 땅의 어떤 미천한 존재에게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생의 다양한 버닝부쉬의 경험은 잠시 있다 사라져 버릴 것같은 우리의 짧은 인생속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대면하는 신령한 경험이 됩니다. 이같은 한 예는 다니엘의 세친구가 풀무불의 불꽃가운데 함께했던 주님과의 만남의 경험일 것입니다. 또한 돌아맞아 죽어가는 순교자 스데반 집사님이 그를 향해 보좌에서 일어서신 부활의 주님을 바라본 경험이기도 합니다. 이같은 엄청난 경험들은 아닐지라도, 우리도 마치 “순간”과도 같은 짧은 인생속에서 “영원”(eternity)을 맛보게되는 일들을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같은 버닝부쉬의 경험속에서 우리는 세상끝날까지 함께하실 영원하신 하나님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애굽을 향해 홀로 떠나가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I AM WHO I AM.”) 그것은 하나님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장차 있을 미래에도 여전히 우리곁에 계신 영원한 하나님이라는 약속이요, 선언입니다. 모든 세대에, 그리고 모든 성도들에게 주님은 여전히 “영원한 현재”(the eternal present) 곧, “I AM” 이십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의 주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