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사랑한 선교사 이야기 37] 조지 프렌치(French, Geor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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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문 목사(시카고나눔교회 담임)

한국 구세군 2대 사령관으로 부임한 조지 프렌치는 영국 브리스톨 출신으로 영국과 네덜란드에서서 사관으로 사역을 했으며 미국에 이주하여 서군국 서기장관으로 일하다가 1916년 부인과 두 자녀를 데리고 서울에 내한하였다. 구세군의 한국선교 출발점은 1908년 호가드(Hoggard,

Robert) 정령이 한국 초대 사령관으로 부임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에 호가드 사령관 부부를 비롯하여 본윅(Bonwick) 부부, 워드(Ward, Edith) 선교사 등 6명이 영국에서 최초로 구세군 선교사로 내한하여 1910년 2월 구세군 사관학교가 개설하게 되었다. 그후 미국에서 프렌치가 내한하여 구령 사업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였으며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청소년 집회를 통하여 어린이 부흥에도 큰 기여를 했다.

프렌치 사령관은 “청소년들은 구세군의 성장 발전을 가져올 미래인 까닭에 이들이 진실로 믿음의 확신을 갖도록 이들을 영적인 전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또한 1917년도 한국 구세군에 최초로 여성 사관교육 훈련을 실시하여 사관 부인과 전도 부인들 24명의 졸업 임관이 있었다. 여성 지도자로 임명을 받은 그들은 충남, 전북, 해주, 개성, 경성, 대구, 영남지방 임지로 떠나 사역을 하는 전도 부인들이다. (오늘날 심방 전도사) 농촌과 도시를 막론하고 각가정과 교회를 연결 시켜주는 매개체로 전도사 역할을 하게된다. 이후 한국 교회에서 전도 부인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각 교단마다 체계적으로 전도자를 양성하는 교육과정이 만들어졌다. 전도 부인의 역할은 교회의 여성 지도자요 여성 계몽 운동의 선구자이었다.

당시 여성교육은 선교사들에 의한 교육을 제외하고는 전무한 상태였다. 선교사들에 의하여 가정이 아닌 교회와 사회라는 공적 기관에서 봉사의 기회를 갖고 교육을 통하여 눈을 열게 했다.   구세군 선교는 여성교육과 남녀평등권을 강조 하였고 한국 교회사에도 최초의 안수받은 부부사관 (목회자)이 나오게 되었다. 프렌치 사령관은 추운 겨울동안 궁핍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하여 어려운 가족들을 돕고 긴급구호를 제공하는 급식소를 열고 따뜻한 방을 약자인 여성들과 아동들에게 제공하는 사회 사업에도  힘썼다.

프렌치는 한국 선교 사역을 마치고 떠나는 1919년에 교회 수는 3,279개이었고 교인 수는 355,114명이 될 만큼 열정적인 선교사역에 힘써왔다. 그가 강조하는 성결은 그의 신앙을 잘 드러내는 몇가지를 소개해 본다. 첫째, 누구든지 정결한 눈과 정결한 마음을 갖고 범사를 정직하게 처리하는 자라야 한다. 둘째, 성결한 사람은 하나님 명령을 잘 복종하는 사람으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언약대로 이루워 질것이다. 셋째, 우리의 마음의 중심이 정결해야 된다. 넷째, 하나님께서 당신에 백성에게 성결하라고 하시는 것은 기쁨을 누리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의 성결의 삶은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 본이 되었다. 프렌치 구세군 사령관은 인도 나라로 사역지 명령을 받고 떠났지만 그의 아들 링컨 프렌치는 한국에 남아서 아버지 뒤를 이어 한국인들을 일깨우는 사역을 하게 된다. 그러나 건강치 못한 상태에서 풍토에 적응하지 못하고 폐렴으로 내한한지 7년 만에 25세의 나이로 하나님을 부름을 받았다. 가장 많은 조문객들이 모여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짧은 인생이지만 생전에 부모로부터 성결의 신앙을 본받아 살았고, 많은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주는 선교적 삶을 살았다.(참고도서: 한국 기독교 여성 100년의 발자취, 기독신보, 양화진 선교사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