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신앙: 하나님의 언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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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논문심사위원)

 

그리스도는 구약과 신약 모든 곳에서 나타나고 전파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형태이다. 본질은 같다. 같은 그리스도이다. 어떤 남자가 성형수술을 지나치게 해서 여자가 되었다. 얼굴과 몸의 형태가 완전히 다르다. 여자로 살아 보니까 싫증이 났다. 그래서 다시 남자가 되었다. 또다시 극적인 몸의 변화가 일어났다. 겉으로 보면 다른 세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사람 자체가 바뀌지는 않았다. 같은 영혼이 있는 같은 사람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도 구약과 신약에서 그 본질은 변함이 없다. 구약에서의 그리스도는 주로 상징을 통하여 나타났다. 제사 의식, 할례, 유월절 어린양, 절기, 의식을 통하여 나타났다. 구약에 이토록 상징이 많은 이유는 당시에는 언어를 통하여 전달할 수 있는 한계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손쉽게 성경책을 구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점토판이 필요했다. 양피지 같은 것은 고급 재료이고, 파피루스도 후대에 개발되었다. 또한 많은 사람이 글자를 모르기 때문에 언어를 통하여 전달하는 것은 많은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구약시대에는 상징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많은 상징은 하나님의 계시를 나타내 주는데 이 계시의 중심에 하나님의 언약이 있고 하나님 언약의 중심에 그리스도가 있다. 구약의 모든 상징은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 하였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7장 5항에서 말한다. “이 언약은 율법 시대와 복음 시대에 각기 다르게 집행되었다. 언약이 율법하에서는 약속들, 예언들, 제물들, 할례, 유월절 양, 그리고 유대 백성들에게 전해진 다른 모형들과 의식들에 의하여 집행되었는데, 이 모든 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 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약속된 메시아를 믿는 신앙으로 피택자들을교훈하며 세우는 데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것들만으로도 충분하였고 효과적이었다. 그 메시아로 말미암아 그들은 완전한 죄 사함과 영원한 구원을 얻었는데 이를 구약이라고 부른다.”

그 후 2000년 전 상징으로 예표 되었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오셨다. 그리스도는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그 이후로 그리스도는 어떻게 되었나? 우리의 곁을 떠나셨나? 그렇지 않다. 구약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우리에게 역사하신다. 어떻게 역사하는가? 주로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역사한다. 그렇다면 구약의 상징들은 어떻게 되었나? 두 가지 성례로 단축되었다. 바로 세례와 성찬식이다. 이것은 언약의 중심인 그리스도의 형태가 변한 것이다. 그 본질은 여전히 똑같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신약의 성도도 구약의 모든 상징을 다 지키는 것이다. 유월절, 제사, 안식일, 속죄일, 의식들… 이 모든 것을 여전히 우리도 지키고 있다. 다른 형태를 통해서 지킨다는 말이다. 말씀과 성례를 통해서 여전히 같은 본질인 그리스도를 집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이나 신약이나 단 하나의 언약이 있을 뿐이다. 이 부분을 신앙고백 7장 6항에서 고백한다. “복음 시대에서는 복음의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게 되자, 이 언약은 말씀 선포와 세례와 주의 만찬인 성례의식으로 집행되었다. 이 의식들은, 수적으로는 몇 안 되어 단조롭고, 그리고 외적인 화려함도 없이 집행되지만, 그것들을 통해서 그 언약이 모든 민족, 곧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더욱 충분하고, 확실하고, 영적인 효과를 가지고, 제시되고 있다. 이를 ‘신약’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본질 면에서 차이가 있는 두 종류의 은혜 언약이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세대에 걸쳐 있기는 하지만 하나의 동일한 언약이 있을 뿐이다.”

이런 개혁주의 신앙고백에 정면으로 도전한 사상이 소위 말하는 세대주의라는 교리이다. 세대주의에서는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구원을 베푸심에 있어 각기 다른 목적과 방법을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세대주의 학자들은 인간 역사를 일곱 세대로 구분한다. 즉,무죄 시대, 양심 시대, 인본 정치 시대 약속 시대, 율법 시대, 은혜 시대, 왕국 시대이다. 세대마다 하나님이 구원의 은총을 베푸는 방법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율법 시대와 은혜 시대에 구원의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타락 아래로 하나님께서 죄인을 다루는 하나의 은혜 언약, 즉, 절대적 단일성을 가르친다. 단지 그 언약을 집행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