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은 분

733

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우리 모두에게는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들이 있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자기만의 추억이란게 있다.  지나간 일을 생각 했을 때 웃음지을수 있는 것도 있다. 반대로 기분이 나빠지는 것도 있을 수 있다.  굳이 추억과 기억을 갈라 놓고 보자면, 추억 쪽은 좀 행복해지는 것이고, 기억 쪽은 그저 생각을 더듬어 보는 것이리라. 노년이 되었어도 웃음지으며 사는 사람은 추억이 많기 때문이다. 삶의 자체를 부정쪽에서 보느냐 긍정쪽에서 보는냐의 다름이 얼굴에 나타나기도 한다.  긍정적인 삶을 산 사람들은 늙었어도 얼굴에 주름이 적은 듯 싶다.  얼굴에 생기는 주름은 생물학적, 유전적, 생활습관에서 생긴다고 한다. 그런데 얼굴에 유독 많은 주름을 가지고 사는 사람일 수록 부정적인 생각 속에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 해 본다.

지금으로 부터 거의 30년전에 교회에서 알게 된 분이 있었다. 당시에 그 분과 나는 10년이  넘는 나이 차이가 있었다. 학식적, 사회적인 지위, 일반적인 경험과 재산 축적 상황 등등이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나 보다는 월등하게 모든면에서 높은그런 분이였다. 내가 굳이 높다고 표현을 한것은 쉬지 않고 공부하는 모습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분과 나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여러가지 봉사 활동을 같이 했었기에 나는 그 분의 생각을 많이 이해를 하였었다.

그 분은 교회 생활을 오래 하신 분이였으나, 교회에서는 어떠한 직분도 원치 않으셨다.  그분과 동년배들은 거의가 장로(elder) 인데, 그 분은 믿음의 세계에선 그런 직분이 중요치 않다고 여기셨다.  한국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그 분의 호칭은 대사(ambassador)였다.  오랜 기간 동안  외교관의 꽃인 대사(大使)를 역임하셨기에 그런 호칭이 붙여진것이다.

이 분이 가지고 있는 해박한 성경지식은 신학전공자 수준에 버금갈 정도였다.  오랜 동안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근무를 할 당시 기독교에 대한 공부를 했단다.  은퇴후에 미국으로 와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 분과 가까이 지내면서 몇가지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게 있었다.  주일날 설교를 듣고 기뻐하는 날도 있지만 대단한 역정을 내시는 경우도 있었다.  크게 기분 나빠 하시는 것 중에 으뜸은 목회자가 설교 중에 신문에 난 세상 이야기를 할 때 였다.  또 하나 다른 것은 교인 중에 누구는 어떠하다는 것을 설교중에 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였다.   주일날 교회에 오는 것은 하나님 말씀들으러 온것이지 신문에 난 세상 이야기 들으러 온게 아니란거다.  세상이야기를 들으러 교회에 온 것은 시간 낭비라는 거다. 또하나 설교 시간에 개인의 헛점을 이야기 한다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예를 들면 장로가 목사 말을 안듣는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할 때이다.  그 분은 앎이 삶에 연결되지 않은 모순적인 사람들에 대한 분노였다.  오랜 종교 생활을 했고,  많은 성경 공부를 했다해도 타인으로 부터 존경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목회자를 비롯해서 교회에서 직분 받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특히나 뱃속에서 부터 신앙 생활을 했다고 하는 사람이 도덕적, 윤리적으로 모범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도 간간히 보게 된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어느 종교를 갖고 있던지, 그 종교에 심취해 있는 인간들의 특성이다. 종교란 현재의 위치에서 보는 것 보담은 지금까지 생성되어온 역사 내지는 과정도 알아야 한다.  이런 것을 알고자 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쉽게 동화되어 간다.  어느 종교를 믿든 간에 특이한 염력( 念力 )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다. 종교를 갖고 있으면서의 염력(Telekinesis)은 우리가 살아 가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에너지원이 된다고 믿고 싶다.  안타까운 일이나 그 분은 얼마 전에 COVID-19 에 백기를 들고 지구를 떠났다.  그 분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