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김정은 수석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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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던 중 문 대통령이 북한의 대변인이라는 식의 발언을 하자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단상으로 나가 의장에게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오대근 기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발언에 난장판된 국회

더불어 민주당, “국가원수 모독죄로 윤리위 제소”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해달라”고 발언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양측이 정면충돌하고 있다. 민주당이 이를 국가원수 모독 발언으로 규정,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키로 하면서 정국은 급속도로 얼어붙는 모양새다. 한국당은 “야당 원내대표 연설을 방해했다”며 민주당에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 등장 후 새 지도체제를 완성한 여야가 총선을 1년여 앞두고 지지층을 겨냥한 듯 격렬한 대치국면에 빨려들고 있다.

나 원내대표의 이날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20분 넘게 중단돼 국회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나 원내대표는 “국민 여러분께 (정부를 대신해) 깊은 사과 말씀을 올린다”면서 연설 초반부터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부각시켰다. 그는 “70여년의 위대한 대한민국의 역사가 좌파정권 3년 만에 무너져 내려가고 있다”며 거친 표현으로 정부의 경제 정책을 겨냥했다.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던 연설은 나 원내대표가 “헌정농단 경제정책”이라고 언급하면서 이상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는 자명하고 시장질서에 정면으로 반하는 정부의 인위적 개입과 재분배정책이 고용쇼크, 분배쇼크, 소득쇼크로 이어졌다”며 “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은 위헌이고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헌정 농단’ 경제정책”이라고 말하자 민주당 의원석에서 “여보세요!”, “내려오세요!”라는 항의가 터져 나왔다. 나 원내대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장은 불공정하고 정부는 정의롭다는 망상에 빠진 좌파정권이 한국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며 원색적인 톤으로 연설을 이어갔다.

문제는 연설 시작 10여분 후,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지적하는 대목에서 터져나왔다. 나 원내대표가 “가짜 비핵화로 얻은 것은 한미훈련 중단뿐”, “종북에 심취했던 이들이 이끄는 운동권 외교”, “청와대 안보실장, 외교부 장관, 국정원장을 교체하고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라”고 언급하면서 야유를 보낸 민주당 의원들은 급기야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해달라”는 발언이 나오자 일제히 폭발했다. 민주당 의원석에서 “취소해! 취소해!”라며 고성이 나왔고 조승래, 권칠승 등 일부 의원은 삿대질하며 성토하다 본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고성과 막말이 오가는 속에 나 원내대표가 “여러분의 의사는 (연설이) 끝나고 표시해달라, 제발 조용히 해달라”며 말을 이어가려 하자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와 이철희 원내수석이 국회의장석에 달려나가 공식 항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홍 원내대표가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이따위 이야기나 하고!”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정양석 한국당 원내수석은 “그만큼 소리질렀음 됐잖아”라고 맞받아쳤다. 사태 심각성을 감지한 바른미래당 김관영,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도 의장석에 올라갔다. 한국당 권성동 의원은 홍 원내대표를 향해 “홍영표 야 인마”라고 소리쳤고 의원들 사이에 밀고 당기는 몸싸움도 벌어졌다.

2016년 9월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이 개회사에서 우병우 민정수석과 사드 배치 등 당시 여권(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에 민감한 내용을 언급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집단 퇴장하고, 사흘 뒤 진행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교섭단체연설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집단 야유를 보낸 적은 있지만 연설 자체가 중단된 것은 이례적이다. 20여분간 진행된 연설 중단 사태는 문 의장이 “이제 그만 냉정해지자. 모든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고 정리하면서 마무리됐다.

본회의장에서 격분한 민주당은 직후 긴급 의원총회를 갖고 법적 대응과 국회 윤리위 제소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해찬 대표는 “대한민국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죄”라며 “즉각 법률 검토를 해서 윤리위에 회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가원수 모독죄가 1988년 폐지된데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을 ‘귀태’(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에 비유(홍익표 수석대변인)했던 점을 감안하면 민주당도 관련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청와대도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은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며 사과를 촉구했다. 반면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민주당 연설 방해는)민주주의 본질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나 원내대표의 발언으로 정국이 급랭하면서 어렵사리 개원한 3월 국회는 시작과 동시에 암초에 부딪쳤다. 여야 4당은 이날 패스트트랙에 올릴 법안을 선거제개혁(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공직자비리수사처·검경수사권조정 등으로 압축했지만 한국당이 반발하는 상황에서 ‘연설 파문’으로 여야의 강대강 대치가 더욱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때문에 선거제 개혁은 물론 신속한 개혁·민생입법 처리가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정승임·강유빈·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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