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와 재정설계] 암

1816

워렌 송

재정전문가/시카고

 

“당신 암이래.”

마취에서 깨어나 어렴풋하게 의식이 돌아오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말을 던졌다. 전날까지, 어떻게 하면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지 않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나였다. 장을 몽조리 비워 내야 하는 하루 전날의 과정이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일년 전부터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으라 성화였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소화와 배설에 관한 한 그 어떠한 문제도 없다고 자신하던 터라, 이 검사의 과정이 괜시리 만사를 당겨서 걱정하는 아내의 불필요한 집착이라 간주했었다. 아내의 말을 들으며 그럴 리가 없다는 의심스런 시선으로 애써 미소까지 지어보았다. 아내와 함께 검진의가 설명하는 사진을 보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직장 바로 위에 약 8센티나 되는 암덩어리가 장의 통로를 2/3 나 막고 있었다. 수술 받지 않으면 2년 내에 사망 할 수 있다는 담당의사의 말에 아내는 아이처럼 울어버렸다. 모든 활동을 접고 각종 검사와 수술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일상사는 물론이려니와 생업까지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되기 바로 전이었기에, 외과적 수술을 배 안에 실행하는 것으로 대장암 수술은 끝이 났다. 생활습관의 변화와 식이요법 등 암 환자가 겪게 되는 일반적인 과정을 힘겹게 거쳐나가야 했다. 벌써 2년이 된 이야기이다. 암수술 후 거의 두 달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모르고 지냈더라면, 대장검사를 받지 않았더라면, 2년 안에 죽게 될 운명이었다. 수술을 준비하는 기간 내내, 그리고 수술 후 요양하는 동안, 그렇게 나 자신을 온전히 내려 놓고 삶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다. 죽음 앞에는 그 무엇도 크지 않으며,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죽음은 나 자신을 가장 낮아지게 하며, 가장 겸손하게 만들었다. 아니, 겸손이라기 보다는 ‘본연의 자세’라 표현해야 옳을 듯싶다.

50 넘은 사람들은 반드시 그런 류의 각종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들 말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의료 쪽에 계신 분들이 늘 하는 말이리라 간주해왔다. 돌덩이를 씹어도 소화되는 정도는 아니라 해도, 아직은 각종 검사에 의존해야 하는 나이는 아니라 자위했었다. 여전히 아침 상쾌한 공기에 심장이 힘차게 뛰며, 하루에도 열두번씩 무엇인가를 하고 싶고, 어디엔가를 가고 싶은 나이다. 그런 나에게 병이라니…암이라니… 그건 내 종목이 아니며, 나에게 닥칠 일도, 닥쳐서도 안될 일이었다. 암은 그렇게 예고없이 내 삶 속에 진격해 들어왔다. 암수술의 어마어마한 비용은 다행스럽게도 건강보험회사에서 지불되었다. 문제는 이 모든 기간 동안의 생활비였다. 나는 물론이려니와 아내 역시 병간호로 인하여 정상적으로 일을 하기 곤란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가 마치 이런 일을 위해 예비된 양 아무런 불편없이 해결되었다. 당시 나는 은퇴 후에 쓸 요량으로 연금성생명보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보험에는 암과 같이 중병에 걸렸을 때나 죽을 병에 걸렸을 때, 보험액의 일정부분을 현금으로 미리 쓸 수 있게 하는 기능이 있었다. 수술 후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보험사에 클레임해서 쓸 수 있는 최대의 액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보험료로 지급했던 액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큰 덩어리였다. 누구나 다 늙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으며, 가난해지고 싶지 않다. 아름다운 은퇴를 하고 싶고, 여유로운 여생을 보내고 싶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것은 그저 “wish list” (바라는 것들) 일 뿐이다. 그것이 바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에게 현실이 되게 하려면 미리 계획해야 한다. 물론, 우리의 삶이 계획한 대로 풀려지지 않지만, 특별히 재정계획은 예기지 않는 삶의 중차대한 상황을 대비하거나, 원하고 바라는 재정적 미래를 구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미국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 중에, “당신이 계획하는 것에 실패한다면, 당신은 실패를 계획하는 것이다”(If you fail to plan, you plan to fail.)라는 말이 있다.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특히 재정적 실패를 계획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847-660-8984)

(※이번 주부터 재정전문가 워렌 송의 백세시대와 재정설계 칼럼을 재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