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와 재정설계 54] 비오는 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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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송(재정전문가/KS Financial Planning 대표)

 

기다렸던 주말에 기온을 확인해 보니 90도 이상 올라간단다. 오후 한차례 비가 내릴 가능성이 35% 정도로 “storm warning” 도 있었다. 일주일 세워두었던 골프백을 싣고 아내와 소풍을 겸하여 조금 떨어진 외곽의 골프장을 찾았다. 열번째 홀을 지나자 북쪽 하늘에서부터 검은 먹구름이 몰려왔다. 하지만 남쪽 하늘은 여전히 화창하다. “설마 비가 내리진 않겠지? 아니 아니야. 비 오지 않을 거야. 오면 안되” 속으로 되뇌었다. 이런 바람도 무심하게 13홀에 가서는 급기야 비가 내리더니 클럽하우스에선 급히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메시지가 배달되었다. 골프카 액셀을 최대로 밟아 클럽 하우스로 향했지만 구멍 난 하늘에선 비가 아닌 물줄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시카고의 비는 내렸다 하면 꼭 이렇게 보란듯이 쏟아진다. 물에 빠진 새양쥐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릴 것을 예상하지 않고서 무리하게 골프 일정을 잡은 내 자신을 한탄했다. 재정문제에서도 이와 같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그것이 규모가 큰 국가에서도 그렇고, 규모가 작은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개인의 재정에도 동일한 원리로 적용된다. 모두가 삶에 대해 예측하기를 꺼려하거나, 아니면 게으른 탓이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 그러나 참으로 어리석게도 우리들은 돈이 좀 있으면 계속 이런 식으로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 수중에 있는 돈이나 재산, 그리고 지금 주어진 기회가 계속될 것이라고 근거없이 생각한다. 물론, 안될일을 미리 생각해서 걱정하고 불안해하자는 것이 아니다. 평상시때에 안전장치를 해 놓으면 유사시, 즉 예기치 못한 일을 당했을 때 그 피해를 최소화 하자는 것이다.

여기 40 대의 남성이 있다고 하자. 연수입 6만불이며, 집한채를 소유한 두 아이의 가장이라 하자. 이 가장이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면, 그 비즈니스가 안될 때도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이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그곳에서 해고를 당할 수도 있다. 혹은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재수없다는 생각을 먼저한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삶의 현실이다. 유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유한한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이런 “생사화복”의 일들은 늘 반복되며 일어난다. 서양사람들은 그래서 이런 삶의 굴곡을 “Rainy day”라는 말로 표현한다. 우리 인생 속에 “비오는 날” 이라는 뜻이다. 삶의 비오는 날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아직 그의 구체적인 인생이 시작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런 인생의 비오는 날을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40이 조금 넘던 어느 해에 어떤 지인이 대화 중 뜬금없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은 이렇게 일하시던 중 큰 사고를 당하시거나 아프게 되면 혹은,  혹시라도 이 세상에 없게 되시면, 사모님과 두 아이는 어떻게 살게하실 거에요?”

전혀,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질문을 받고 당황했던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질문을 받고 속으로는 매우 언짢았었다. 첫째는 불행한 일을 가정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안전장치에 대해 한번이라도 생각지 못하고 지냈던 내 자신에 대한 한심함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바로이 질문이 나로 하여금 재정전문가의 길로 들어오게 했던 단초가 되었었다.

“비오는 날”을 대비하여 재정플랜을 세우는 것은 우리 사회에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때 세우는 재정플랜은 보이는 물건의 겉모양만 보고 구입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시중에 나와있는 재정상품들은 저마다 중요한 특징이 있다. 재정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매번 느끼는 것이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볼 때, 구입한 재정상품이 좋은 것이냐 좋지 않은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그 회사가 좋은 회사이냐 아니냐의 문제도 사실은 이차적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이슈는 그 재정상품이 소비자의 “비오는 날”을 적절하게 대비하고 있으며, 그 상품의 특징들이 충분히 활용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안전불감증! 비단 사회적인 문제로 보아 사건 사고에만 국한 시킬 것이 아니다. 나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재정계획을 잘 세워 놓으면 인생의 “비오는 날”이 와도 극심하게 위축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계획을 잘 해 놓는다고 해서 우리 삶이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어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땅에 발 붙히고 사는 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하는 것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삶이 아닐까 한다.(847-660-8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