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간도 항일 독립운동의 발자취

1884
애국지사 규암 김약연 선생의 증손자 김재홍씨.

증조부 김약연 애국지사 사료 전시 김재홍씨

23일~3월15일 문화회관

“증조부이신 규암 김약연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찾아다니면서 자료를 모았고, 집안의 역사를 넘어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를 올바로 알려야한다는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애국지사 김약연 선생의 증손자 김재홍(71) 사단법인 규암 김약연 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오는 23일부터 3월 15일까지 윌링 한인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대한독립 항일독립운동의 기지 북간도 명동촌 역사 특별 기획사진전’을 위해 시카고를 찾았다. 함북 청진에서 태어나 한국전 당시 부산으로 피난했고 서울에서 자랐으며 경희대(경제과)와 연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규암의 맏며느리인 할머니로부터 증조부의 이야기를 전해들었지만 집안 어른들이 돌아가신 후 후손으로서 선조들에 대해 잘 모른다는 스스로의 무지함을 자책하고 1980년대부터 기회가 닿는 대로 곳곳을 다니며 사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김 사무총장은 “수집된 사료의 가치를 제대로 알기 위해 공부했고 증조부가 활동했던 북간도, 명동촌, 용정으로 답사를 다녔다. 토론토, LA, 뉴욕 등에서 만난 북간도 후손들로부터 귀한 이야기와 사료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증조부의 흔적을 되짚을수록 알면 알수록 뭉클하고 독립군의 꿈과 염원이 느껴졌다”고 전했다. 대한항공에서 1999년 정년퇴직 후 본격적으로 증조부의 1910~1930년대말까지 북간도 독립운동 사료를 발굴하고 정리해오고 있는 그는 방대한 자료들을 독립기념관, 민속박물관 등에 나누는 한편,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돕고 책 출간, 자료 전시회, 강의 등을 펼치고 있다.

규암 김약연 선생.(1868~1942)
<사진=김약연기념사업회>

함경도 회령 태생인 김약연 선생은 1899년 북간도 명동촌으로 이주해 황무지 땅을 개척해 마을로 발전시켰고 독립운동가, 교육자, 목회자로서 활동했다. 규암은 일찍이 명동서숙을 개교한 이래 명동학교와 명동여학교로 발전시켜 독립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지역 교육 계몽 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다. 명동학교는 문을 닫은 1925년까지 1,2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그중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교육자들이 있었다. 제자이자 조카이기도 한 시인 윤동주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북간도의 민족지도자였던 규암은 1913년 중화민국으로부터 간민회 총회장으로 승인받았고 무오독립선언에도 참여했으며, 1919년 3월13일에는 북간도 용정 서전대야에서 3만여명의 한인들이 3.1만세운동을 축하하고 동조하기 위해 벌인 항일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규암을 포함한 17명이 육탄혈전을 공포하는 ‘독립선언 포고문’을 서명, 선포했다.

육탄혈전을 선언하며 무장 투쟁으로 나갈것을 공포한 ‘독립선언 포고문’.
<사진=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김재홍 사무총장은 “북간도의 독립운동은 무장독립투쟁과 항일민족의식 교육이라는 두 축이 있었다. 무장독립투쟁의 상징은 시인 윤동주의 고향이기도 한 명동촌이었다. 사단법인 규암 김약연 기념사업회가 제공한 사진들로 마련된 이번 전시회에서는 89점에 달하는 다양한 사료를 통해 북간도의 항일독립운동을 재조명하려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3.1운동 10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에 해외 동포들과 역사적 의미를 함께 공유하고 싶어 전시회를 열게 됐다. 문화회관 임문상 부이사장과의 오랜 인연으로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시카고에서 전시회를 갖게 돼 감격스럽다. 이번 전시가 이주 디아스포라 동포분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줄 좋은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홍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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