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읽기] 마름과 오너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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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공인회계사/변호사/Taxon대표

 

한 때 전국민이 그를 미워했다. 그는 부정부패의 근원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내 어머니는 그를 미워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한다. 어머니는 서울의 한 특급 호텔에서 객실 청소를 하셨다. 그 호텔에 그가 가끔씩 왔단다. 낮에 혼자 스위트 룸을 빌렸단다. 그 곳에서 혼자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도 마시고, 담배도 몇대 피우고 가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가끔 청소를 하는 어머니를 만나면 5만원 정도를 팁으로 줬단다. 지금으로부터 삼사십년 전의 일이다. 그러니, 5만원은 상당히 큰 돈이었을게다. 한보그룹의 정태수 회장 이야기다.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마름’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마름’은 머슴이란 뜻이다. 정태수 회장은 법원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계열사 사장을 ‘마름’이라고 부른다. ‘주인’인 회장만 아는 사실을 ’마름’인 그 계열사 사장이 어떻게 진술을 할 수있겠느냐는 말을 하면서였다. 그는 하루아침에 세상의 모든 직장인들에게 굴욕을 안긴다. 직장인을 모두 ‘마름’으로 만든 것이다. 반면에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고국의 대기업 회장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전수한다. 감옥에 갈 일이 생기면 ‘휠체어를 타고 가라’는 것이다. 그 자신이 수년간 휠체어를 탄 채로 재판을 받았다. 휠체어를 타고 재판을 받은 원조 회장님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영국의 경제신문 <파이낸셜 타임스>는 ‘한국의 회장님들은 어려움에 처하면 휠체어를 탄다’고 했을까? 이 문장은 이 신문 2007년 9월 12일자 기사의 실제 제목이다.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쳤지만 ‘오너리스크’라는 말을 배운 적은 없다. 오너리스크(Owner Risk)는 사실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한국에서는 ‘오너리스크’라는 말을 아주 흔하게 사용한다. 기업의 ‘주인’ 잘못으로 인해서 기업이 경영상 위험에 처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에서 이 말이 많이 쓰이는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은 재벌 기업이 몇몇 가문에 의해서 독점적으로 소유되고 경영되기때문이다. 주식회사는 주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주인이다. 상장된 주식회사는 주인이 많다. 그런데도 한국의 대기업은 창업한 사람 또는 그의 자식들이 아직도 기업을 지배하며 경영하고 있다. 오늘날 선진국의 많은 회사들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 되어있다. 패리스 힐튼이 ‘힐튼’ 호텔의 주식을 상속받았다고 할 지라도 그녀는 호텔을 경영하지는 않는다. 그 호텔의 경영은 전문 경영인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재벌 총수 가문이 회사를 직접 경영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경영능력이 없는 재벌 총수의 딸이 회의 도중에 물컵을 던지는 것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 되지 않은데 따른 부작용은 물컵 하나만 깨뜨리고 끝나지 않는다. ‘주인’인 대주주가 불법을 저지르면 회사의 이미지가 나빠진다. 나빠진 회사 이미지는 회사의 경영상태를 악화시킨다. 이렇게 되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고객과 직원과 소액주주들이 떠안는다.

미국에서 한인들이 영위하는 사업은 대부분 규모가 작다. 이렇게 작은 기업들은 대부분 소유와 경영이 분리 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고국의 기업들과 같이 오너리스크가 늘 존재한다. 사업체의 오너들이 안고 있는 첫번째 위험은 ‘나쁜 평판’에 대한 위험이다.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다. 시카고에서 자기 병원을 운영하던 한 산부인과원장이 바람이 났단다. 이 소문을 들은 한인 임산부들이 그의 산부인과에 가지 않는 바람에 그의 병원이 결국 문을 닫았다고 한다. 고객들에게 한번 나쁜 평판을 받게 되면 되돌리기가 대단히 어렵다. 작은 기업의 경우 자칫 기업의 생존마저 위태롭다. 기업의 오너들이 안고 있는 두번째 위험은 소송을 당하게 될 우려다. 미국에서는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어도 언제든 소송을 당할 수있다. 그런데 소송을 당하면 대부분 이겨야 본전이다. 많은 경우에 엄청난 변호사 비용과 시간을 써야한다. 그렇기때문에 불법적인 일에 연루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웬만해서는 적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세번째 오너리스크는 건강의 악화다. 작은 기업일수록 오너에 크게 의존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세기업은 오너가 사망하거나 건강이 악화되면 문을 닫아야만 한다. 그외에도 중요한 정보의 유출이나, 핵심 직원의 퇴사등 작은 기업의 오너는 늘 위험을 안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다시 ‘마름’으로 돌아 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