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읽기] 시간과 여행 그리고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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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공인회계사/변호사/Taxon 대표/시카고

초등학생 때다. 당시 서울의 변두리 지역은 학생수가 교실수보다 훨씬 많았다. 그래서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서 2부제 수업을 했다. 당시에 어떤 학교는 3부제 수업을 하기도 했다. 그날 나는 오후반이었다. 12시 30분까지 등교하면 되었던 것 같다. 아침 8시쯤에 준비를 마치고 12시쯤에 학교로 출발하려고 기다렸다.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혼자 산에 갔다. 집이 산꼭대기에 있어서 집밖을 나서서 조금만 올라가면 산이었다. 한참동안 산을 헤매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런데 아직 학교에 가려면 한참 남았다. 다시 산에 올라갔다. 온 산을 혼자 헤매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날 오전에 아마 뒷산에 세번쯤 올라 갔던 것같다. 그러고도 그날 학교에 조금 일찍 가서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땅따먹기를 실컷 했다. 아주 긴 오전이었다. 하지만 그날 오후에 들은 수업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다.

10대에는 시속 10마일의 속도로 가던 세월이 60대에는 시속 60마일로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10대와 60대에게 눈을 감고 1분이 되었을 때를 짐작해서 스탑워치를 누르라고 한 것이다. 60대가 평균적으로 5초 정도 늦게 정지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동작이 굼떠서일까? 아마도 나이가 들수록 같은 시간을 짧게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때는 몸도 작고 동작도 빠르다. 1분동안 아이들은 온 집안을 열바퀴도 더 돌 수있다. 하지만 같은 1분동안 어떤 어르신은 겨우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허리를 간신히 편다. 젊어서는 동작이 빠르다보니 하루에 할 수있는 일이 많다. 그만큼 하루가 더 긴 것이다. 반면에 나이가 들면 움직임이 늦다. 어떤 노인은 아파트 관리비를 내고 나면 하루가 다 지나간다고 한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 온 전체 시간중에 특정한 시간이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시간의 길이를 느낀다는 해석도 있다. 두살짜리 아이에게 1년은 인생의 절반이라 아주 긴 시간이지만, 60세에게 1년은 고작 60분의 1에 해당하기때문에 짧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다. 그럴법도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나이에 따라서 시간에 차이를 느끼는 이유에 대해 가장 그럴싸한 해석이 있다. 어렸을 때는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롭다. 새로운 경험은 우리들 기억에 오래 남고 시간도 더 긴 것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일은 별로 생기지 않는다. 웬만한 일들은 이미 다 경험해 본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가 익숙한 것들은 특별하게 느끼거나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단다. 뇌가 효율적으로 작동해야 에너지를 아낄 수있고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똑같은 시간이라도 더 길게 느껴지게 하기위해서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다.

여자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소비’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무엇을 가지기 위한 소비다. 옷을 사고 보석을 사는 소비다. 또다른 소비는 누리기 위한 소비다. 여행이나 뮤지컬 관람이나 좋은 곳에서 식사하는 데 돈을 쓰는 것이다. 소위 경험을 사는 소비다. 가지기 위한 소비와 누리기 위한 소비중에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소비는 단연 누리는 소비라고 한다. 경험하고 누리는 소비는 우리에게 이야기거리를 남겨주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행위들이 각각 어느 정도나 의미가 있고 얼마나 재미가 있는지를 물었다. 연구결과, 여러가지 활동들 중에 의미도 가장 많고 재미도 가장 많은 일은 단연 ‘여행’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행위는 걷기,놀기,먹기, 말하기,그리고 쉬기 등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종합한 행위가 바로 ‘여행’이기 때문이다.

유럽 여행 도중 가이드가 이런말을 했다. “가슴이 떨릴 때 여행들을 오셔야 하는데 대부분 다리가 떨릴 때 여행을 오신다.” 함께 단체여행을 하던 일행의 대부분이 노인분들이어서 한 말이었다. 걸을 수만 있다면 새로운 곳으로 떠나보자. 그리고 누리는 소비를 늘리자. 일상에서 될 수있는 한 새롭고 낯선 경험들을 해보자.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원하던 내일이었다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