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읽기] 투자 혹은 시간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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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공인회계사/변호사/Taxon대표

두가지 일이 있다. 당신은 둘중에 한가지 일만 할 수가있다.  선택은 당신이 해야한다. 두가지 일은 거의 비슷한 정도의 노력을 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일이 끝나고 받는 보수는 다르다. 첫번째 일을하면 무조건 200불을 받는다. 확실히 받는 것이다. 하지만 두번째 일을 하면 돈을 받을 수도 있고 못받을 수도 있다. 돈을 받게 되면 2,000불을 받게 된다. 하지만 2,000불을 받을 확률은 10%다. 일을 하고 한푼도 못받을 확률이 90%다. 당장 돈이 확실히 필요한 사람은 첫번째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충분하거나 돈이 충분한 사람은 두번째 일을 할 수도 있다.         

처음 개업했을 때 일이다. 상담을 받겠다고 고객 한분이 찾아 오셨다. 중년의 여성분이었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분이었다. 자신의 남편도 사업을 한다고 했다. 부부가 지금까지는 자영업으로 사업을 해왔단다. 법인을 만들어서 사업을 하게 되면 어떤 장점이 있는 지 물었다. 정성을 다해 설명을 해 드렸다. 그런데 이미 내용을 어느정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이미 다른 회계 사무실에서 여러 차례 상담을 받은 듯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분은 내 앞에 서류를 한뭉치 꺼냈다. 어떤 호텔의 재무제표였다. 재무제표를 영어로는 Financial Statement라고 한다. 그 호텔의 자산이나 채무, 그리고 연간 순이익을 알 수있는 서류다. 회계 전문가가 그 서류를 보면 그 호텔이 일년 동안 얼마를 벌고, 얼마를 쓰는지, 그 호텔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대략 짐작할 수있다. 여성분은 나에게 이 호텔의 재무제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원했다. 넘치는 열의로 설명을 해 드렸다. 두세시간 정도가 지났다. 그때 고맙다는 말을 들었는 지는 잘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명함 한장을 놓고 떠났다. 남편과 회사설립에 관해 상의를 하고 나중에 다시 연락을 하겠단다. 그녀가 사무실을 떠나자 나는 마치 사기를 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고객이 사려고 하는 호텔의 재무상태에 대해서 나에게 공짜로 설명을 듣고 떠난 것이다. 막 개업을 했으니 나는 당시에 시간이 많았다. 일주일쯤 지나 그분에게 연락을 드렸다. 법인 설립은 좀 더 생각을 해보겠단다. 나는 지난번에 상담을 해 드린 내용에 대해서 수수료를 청구하겠다고 알려드렸다. 그랬더니 전화로 나에게 욕을 한다. 수수료를 부과한다는 말을 미리 하지도 않고 왜 이제와서  청구를 하느냔다. 그날 바로 편지 한장을 보냈다. 상담 수수료를 3일안에 보내지 않으면 고소하겠다는 편지였다. 편지를 보내고 이틀 후에 Overnight Mail로 수수료가 도착했다.

수수료를 받았지만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해해 보려고 했다. 아마도 그녀는 부동산 중개업을 하시는 분이어서 시간당 수수료에 대해서 의아해 했을 수도 있다. 부동산 중개인은 거래가 성사되어야만 수수료를 받는다. 중개인이 집을 사겠다는 고객에게 열군데 집을 보여주었다고 치자. 고객이 아직도 마음에 드는 집이 없어서 다른 집들을 더 봐야겠다면 중개인은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할 것이다. 화가 난 것이 고객에게 조금씩 드러날 수도 있다. 이 순간부터 고객에게 불친절해진다. 고객도 인간이면 조금씩 미안해 진다. 중개인의 불친절에 실망도 한다. 이때 대부분의 고객은 새로운 중개인을 찾아간다. 새로운 중개인은 아마도 친절할 것이다. 고객은 새로 만난 중개인에게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가 새로운 중개인을 통해 집을 사는 경우도 있다. 이미 앞선 중개인과 여러군데 집들을 보았으니, 결정하기가 쉬워진다. 이 고객이 다른 중개인을 통해 집을 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열군데 집을 보여준 중개인은 분노할 것이다. 이런 일들을 여러번 겪고나면 인간에 대한 배신감마저 들 수도 있다. 아마도 나를 찾아온 분도 그런 경험이 여러번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나니 그분을 용서하기가 조금 쉬워졌다. 이 일을 겪고 난 후로, 처음 내 사무실에 오는 고객들에게는 먼저 상담수수료를 안내한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내게 감사한 분이었다. 그녀를 만난 뒤로 다시는 쓸데 없는 시간을 쓰지 않도록 해줬으니 말이다.<공인회계사/변호사/Taxon대표/시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