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 읽기] 나한테 맞은 셈 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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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공인회계사/변호사/ Taxon 대표/시카고>

 

딸아이가 학교에 자주 결석을 하자 체육교사가 출석하라고 혼을 냈다. 그랬더니 딸의 어미가 체육교사를 찾아가 오히려 교사를 혼낸다. “교육부 장관한테 이야기하면 너 같은 것 하나 바꾸는 건 일도 아니야.” 학부모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체육교사 입장이 되면 아마도 더 이상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어지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살고싶어 지지 않을 수도 있다. 어디 이 뿐이랴. 이화여대에 딸을 특혜 입학시킨 것도 모자라 교수가 딸아이에게 출석하지 않으면 제적을 당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자, 이번엔 교수에게 “교수같지도 않고 이런 뭐같은게 다있냐” 며 오히려 더한 치욕을 안겨주었다. 존경을 먹고사는 교육자들도 이렇게 대했으니 힘 앞에 한없이 약해지는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에게는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고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최순실 모녀의 이야기다.

 

힘이 있는 사람이 그 힘을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데 쓰면 약한 사람들은 더 큰 힘을 찾는다. 더 큰 힘을 세상에서 못찾으면 귀신을 찾는다. 신앙이라고도 한다. 저렇게 겁없이 마음껏 힘을 쓰고 다녔던 그녀는 이미 귀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힘을 쥔 대통령이 매번 그녀에게 그토록 의지한 걸 보면 그녀는 귀신임에 틀림없다.

 

자본주의 사회의 꽃이라고 불리우는 주식회사의 설립목적은 “주주(Shareholder) 이익의 극대화”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해 당사자(Stakeholder)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주식회사의 목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이해 당사자란 주주 뿐만 아니라 고객, 종업원, 채권자 및 지역사회를 말한다. 이들은 회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회사에 여러가지 공헌을 하거나, 공해나 교통혼잡 등 회사 때문에 발생하는 다양한 피해를 감수하면서 회사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최근에는 이같이 이해당사자라는 개념이 중요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주식회사의 주인은 뭐니뭐니해도 주주이다. 그런데 주주들이 경영에 전부 참여할 수 없다보니 전문 경영인제도가 도입되었다. 전문 경영인은 주주들에게 권한을 위임받아 주주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다.

국가를 주식회사에 비교해보면, 대표자를 뽑아서 국가의 경영을 맡기는 대의 민주주의는 주식회사와 일맥상통한다. 주주는 국민이다. 공직자들은 주인에게 권한을 이양받은 경영진이다. 당연히 공직자들은 주주인 국민의 이익을 극대화 하도록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최근의 사태는 공직자들이 주주가 아닌 어떤 일가족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그들을 주인으로 떠받들었다. 그래서 주주인 국민들이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가짜 주인에게도 화가 났고, 그들을 주인으로 섬긴 경영진에 단단히 화가 난 것이다.

 

그런데 현재 경영진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특히 고국의 대통령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굳이 이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녀의 현 사태 인식을 이해하는데 실마리가 될 사건 하나가 기억 난다.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씨가 군사반란으로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 서슬 퍼런 통치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가 어떤 행사에 참석해서 담배를 피우려고 라이터를 찾았다. 그랬더니 당시에 전북도지사를 지냈던 나이 든 정치인이 대통령에게 라이터를 켜줬단다. 그런데 라이터의 불 조절이 잘못되어 아주 센 불이 올라와서 박정희씨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를 지켜보던 경호실장 박종규씨는 행사를 마치고 도지사를 불러 주먹으로 마구 때렸단다. 아들뻘되는 경호실장에게 얻어맞은 노정객이 하도 억울해서 나중에 이 사실을 박정희에게 일렀다. 그런데 이야기를 전해들은 박정희씨는 씩 웃으며 이랬단다. “나한테 한대 맞은 셈 쳐.” 아마도 현재 고국의 대통령은 자기가 허락해서 자기 권력을 좀 나눠 준 것 뿐인데 뭐가 문제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국가의 주인이 자기라고 생각하는 습성을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정보가 한정되었던 예전에는 리더를 하기가 쉬웠다. 잘 태어나거나, 나이가 좀 많거나 힘이 좀 세거나 무리들보다 가방끈만 조금 길어도 족했다. 그러다가 교육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인터넷이 등장하고 지식과 정보의 양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면서, 보통사람들도 정보를 아무 때나 원하면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능력도 없이 죽은 부모에만 의지하던 그녀는 기이한 리더쉽을 새로 창조해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나보다.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했던 그녀의 불안과, 이를 틈타 그녀 주변에서 잇속을 챙긴 어두운 세력들과, 권력을 쥔 자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모든 비겁한 사람들이 함께 창조한 귀신에게 수십년 동안 속고 휘둘려 왔던 고국의 진짜 주인들이 이 사태를 현명하게 해결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