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 읽기] 어글리 로(Ugly Law)와 노룩 패스(No Look P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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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공인회계사/변호사/Taxon 대표/시카고

메모리얼 데이 연휴동안에 가족과 함께 15마일가량 되는 구간을 하이킹했다. 하이킹을 하면서 놀이를 하나 제안했다. 각자가 새로운 단어를 하나씩 이야기 하는 것이다. 새로운 단어는 자기만 알고 나머지 식구는 모르는 단어여야만 한다. 딸아이는 처음에 몇가지 의학 전문 용어를 이야기 하더니, 곧 ‘어글리 로(Ugly Law)’를 아느냐고 묻는다. 의학대학원을 다니는 딸이 소위 변호사인 나도 처음 들어보는 법을 이야기 한 것이다. 딸에 의하면 이 법은 시카고에 1970년대까지 있었단다. 딸아이의 설명에 따르면 이 법은 못생긴 사람들이 길에 나다니면 벌금을 물리는 법이었다고 한다. 궁금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못생긴 기준은 뭘까? 그리고 못생겼는지 못생기지 않았는지를 누가 결정할까? 나중에 찾아 봤다. 알고 보니 이 법은 못생긴 사람의 통행을 막기 위한 법이라기 보다는 길에서 불구자들이 구걸을 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었다. “신체가 절단 되거나 불구인 사람이 이런 모습을 이용해 공공장소에서 구걸하는 경우에 구속을 시키든지, 벌금을 물리게 하는 법”이었다. 1867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생겼다. 시카고에서는 1881년에 생겼다가 1974년 폐지될 때까지 무려 93년 동안이나 이 법이 존재 했었다고 한다.

나도 단어 하나를 이야기 해야 할 차례가 되었다. 최근에 한국 뉴스에서 접한 노룩 패스(No Look Pass)라는 단어를 이야기 했다. 노룩 패스는 원래 농구에서 상대편을 따돌리기 위해 공을 패스해 줄 방향을 보지도 않고 같은편 선수에게 패스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한국의 한 정치인이 공항에서 바퀴달린 자신의 여행가방을 수행원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굴려보내서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일이 알려지고 나서 당사자인 해당 정치인은 ‘보좌관이 보여서 밀어줬다,’ ‘보좌관과 눈을 마주치지 않은 것을 내가 왜 해명해야 하느냐’라고 말했단다. 일반인의 눈에는 이상해 보이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최근에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서  몬테네그로의 수상을 손으로 밀쳐버리고 그의 앞으로 나서는 장면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이며 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할 자신의 앞에서 얼쩡거리는 유럽의  작은 나라 수상이 우스웠던 것이다. 더욱 가관이었던 것은 그렇게 손으로 다른 나라의 정상을 밀치고도 사과는 커녕 그와는 눈길 한번 마주치지 않는 자랑스러운 세계대통령의 늠름한 모습이었다.

필자의 한 지인은 소위 상류층의 저런 행동들이 특별히 이상할 것도 없다고 말한다. 평소에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자연스러운 ‘아비투스’같은 행동들이기 때문이란다. 그렇기 때문에 저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도대체 왜 사과해야 하는 행동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 지인은 일반인들이 외부에서 이런 사람들의 안하무인격의 행동을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서글프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저 서글프고 말 것인가? 자신의 보좌관이나, 약소국의 정상을 함부로 대하는 저런 사람들이 권력을 가졌을 때, 장애인들에게 구걸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약자에게 함부로 하는 개인적인 행동들이 제도화되어 법으로 만들어진 것이 ‘어글리 로’는 아닐까? 추악한 법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히틀러가 어른 거리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히틀러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장애인을 끔찍히 싫어했다. 히틀러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장애인을 도와서 함께 사는 것은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이라는 자연법칙을 위배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히틀러 자신에게도 지적장애를 가진 여동생이 있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에게도 지적장애를 가진 여동생이 있었다. 두사람은 모두 자신들에게 지적 장애를 가진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자신들이 죽을 때까지 숨겼다고 한다.

먹고 사는 문제를 자연법칙이나 시장에 그대로 맡기게 되면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에 ‘경제 정의’ 라든지 ‘경제 민주화’와 같은 말들이 그토록 관심을 받는 것 같다. 물리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약자도 사회가 함께 보호하고 같이 살아야 한다. 자신이 받고 싶어하지 않는 대우를 남에게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 비해 어떤 면에서는 반드시 약자이고, 누군가에 비해 어떤 면에서는 반드시 장애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