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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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평등하다와 같다라는 단어는 쓰임에 따라서 다르지만, 단어 안에 숨겨져있는 내용은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평등하다고 같지는 않고, 또한 같다 하여 평등하지도 않다. 둘은 서로 다름이 있다. 지금 이 시대의 모든 노년의 사람들은 취미와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나는 자동차 여행을 즐긴다. 이것은 나를 행복하게 만드려는 처방전이기도 하다.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혼자서 즐긴다. 마음의 바닥이 보일 때 까지 돌아 다니다가  다시 집으로 온다.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지면 힘이 든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걷는다면 마음 편히 쉽게 걸을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더 늙어서 거동이 불편하기 전 까지는 자동차 여행을 즐기려 한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나를 가지고 가는 것이다. 자유로움을 얻기 위함인데도, 나는 내 몸에 붙은 먼지 한톨마저 다 가지고 떠난다. 여행 출발부터 나는 내 몸에 붙은 것을 하나 둘, 버리기 시작을 한다. 아름다운 추억마저도 버리려고 애를 쓴다. 살아온 뒤를 보게 되면, 머릿속은 온통 후회 뿐이고, 지금을 보면 불만 뿐인데, 다가올 미래의 희망과 지금의 불만을 적당히 버무려서 행복을 찾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떠난다. 노년이 되면,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움직여서 생기는 불안한 미래를 생각하며 가만히 있는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끼만 잔뜩 붙어 있는 돌덩어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으로선 여행은  붙어 있는 이끼를 털어 내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이 생각이 어느 시점에서는 잘못 된 것임을 알게 될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하면서 당하게 되는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위기를 당하는 것 조차 즐거움으로 받아 들인다. 잘 걸으려면 운동화 끈 부터 잘 메야 한다. 헐렁한 신발을 신고서는 잘 걷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편하고 좋은 것을 놔두고 오래된 자기 것을 가지고 여행자 생활을 한다. 여기서 부터 다름이 있다. 여행중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참으로 귀하다. 그랜드 캐년에서 만난 지팡이 짚고 걷는 87세의 할머니는 젊어서는 스키 강사 였으며, 지금도 눈 위에서는 펄펄 날아 다닌다고 했다. 59세의 여인은 콜로라도 강을 27일간 고무보트로만  여행을  했다며 자랑을 한다. 은퇴한 대학교수 부부는 자기들이 가르쳤던 한국 학생들은 영어로 하는 표현력을 보면 유치원 아이들 수준인데, 시험을 보면 항상 백점이란다.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하는 어느 늙은이는 한없이 더럽고, 추해 보이는데, 자고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나니, 아주 중후한 노인으로 변신이 되었기에, 직업이 뭐냐고 물으니, 일년 매출 2억불 정도 되는 사업가란다. 여행을 하며 자주 느끼는 생각이지만 겉으로만 사람을 보고 평가를 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혼자 다니거나 가족끼리 여행을 다니던 간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마치 우리에 갇혀있던 야생 동물을 풀어 놓았을 때처럼 자유롭다. 집이란 것은 가족 구성원의 의무 공간이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나 여행이란 떠나야 하고, 앞으로 가야하고, 도착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간단한 규칙으로 이루어진 자유로움이 있다. 이 자유로움을 이용하는 여행 속엔 보이지 않는 자기만의 철학을 가져야 한다. 세계 최고의 동화 작가인 안데르센은 “여행은 정신을 다시 젊어지게하는 샘이다.” 라고 했다. 여행은 가는 곳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된다. 오랜 기간 집을 떠나 있게 되면, 가정에 대한 애착심이 강하게 생기게 된다,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유익함도 있다. 대주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의 한페이지만  읽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손에 쥔 책을 어찌 한 페이지만 읽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