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뇌와 교육-Part 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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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임(위스콘신대 교수/유아교육학 박사)

우리는 인간 관계에 있어서 좋든지 싫든지 간에 타자의 영향을 피부 깊숙이 받으며 살아간다. 그 영향은 장단기적인 면에서 매우 긍정적일수도 있지만 아주 부정적일 수도 있다. 또한 때로는 결정적으로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성공과 실패를 아예 가름해버리기도 한다. 게다가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사람들은 부모, 교사, 할머니와 할아버지, 배우자, 직장 동료, 친구, 이웃사촌 등 그 범위가 매우 다양하다.

후생유전학(후성유전학)적으로 볼 때, 아이들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변수는 부모와 교사이다. 사실상,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 어떤 부모아래서 자라는가, 어떤 학교에서 어떤 교사를 만나고 배우는가는 아이들의 인성 교육과 학업의 수준을 ‘결정짓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말과 행동을 보고 듣고 배우며 자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교사가 동기를 부여하고 잘 가르치면, 학생들은 흥미와 더불어 학습 의욕을 갖게 되는 것이다.

후생유전학은 21세기 이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생명 과학과 의학 분야, 사회 심리학 등의 연구들에 의해서 꾸준하게 입증되고 있다. 타고난 유전자가 매우 중요하지만 유전자가 인간의 생명과 삶을 모두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환경적 변수가 매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자아통제(self-control)를 배울 수 있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도, 아주 어려서부터 참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통제력이 없는 사람으로 크고 만다. 결국, 통제력 행사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활성화되지 못한 채 쓸쓸히 사그라져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환경과 경험은 유전자의 화학적 작용을 통해서 인간 생리부터 행동 형성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킨다. 특히 생후 1세 동안 유전자에 일어나는 화학적 수정과 작용은 후에 생성되는 뇌 발달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우연이든 필연이든 좋고 나쁜 만남을 경험한다. 그러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도 주지만 또한 신세를 지거나 은혜를 베풀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사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만남들과 환경적인 요인들을 사회 경제적 지위(socioeconomic status: SES)라는 개념과 구조 하에서 보면, 이에는 ‘zip code’가 ‘genetic code’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를 상당히 포함하고 있다. 즉, ‘우편 번호’가 ‘유전자 암호’보다 오히려 더 심오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는 일상적인 선택이나 진로 결정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주변 환경의 영향 안에서,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때로는 정작 본인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마는가? 인간은 자신이 타고난 가정과 사회와 문화라는 테두리, 더 나아가 국가와 세계라는 큰 틀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개개인의 자질이나 선택과 결정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이 사회가 애초부터 부정의하고 불공정한 것 천지다. 그 누가 상류층 부자인 부모에게서 ‘금수저’로 태어나 승승장구하고 싶지 않겠는가?

모든 아동은 건강과 교육을 위해서 공평하고 공정한 기회를 가질 권리를 타고난다. 그리고 성인은 아이가 사회 경제적 지위에서 비롯되는 제약과 장벽들을 넘을 수 있도록 도울 책임이 있다. 이에 ‘공공복지’와 ‘공교육’에 대한 투자가 더더욱 요구된다고 하겠다. 그래야 각종 교육기관들이 앞장서서 아동에게 많이 보고 들어 견문을 넓혀가도록 기회와 환경을 조성해줄 수 있다. 즉,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하고, 박물관도 견학하고, 자연물을 접하며 신나게 놀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배우는, 그런 교육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