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칼럼] “다른 시선”

1986

배겸 변호사/법무법인 시선 대표

 

미국 로스쿨에서 소크라테스식 문답법(Socratic Method)이 널리 채택되고 있는 이유는, 일방적인 지식 전달의 목적을 가급적 배제하고 주어진 법률 명제를 여러 다른 시선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로스쿨 교수는 학생들에게 법률에 대한 지식을 일방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아무 사전지식도 없는 수십명의 학생들 머리 위로 질문 하나를 던지며 강의를 이끌어 간다.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난 후 오히려 여러 궁금증을 품을 수 있도록, 그렇게 자칫 무뎌질 수 있는 사고의 부지런함을 키우는 데에 로스쿨의 기본 방향이 담겨있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첫 학기 형법 강의의 첫 질문은 ‘인간이 과연 더 나은 선을 이루기 위해, 혹은 더 심각한 악을 피하기 위해 무고한 타인을 희생시킬 권리가 있는가’였다. ‘Homicide by Necessity’ 라고도 알려진 이 명제는 다음과 같은 예로 설명할 수 있다.

선장과 승객 20명을 태운 구명보트가 승객들의 무게에 못이겨 바다 한가운데서 가라앉기 시작한다. 무사히 육지로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인원 한명을 줄여야 한다. 선장은 육지로 가는 방법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고, 또한 20명 승객에 대한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19명의 승객을 살리기 위해 선장이 어느 한명을 바다에 던져야하는 것인지, 혹은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하여 본인의 결정 권한을 포기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차라리 선장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고 나머지 승객들의 안전은 운에 맡겨야 하는 것인지, 이 명제는 다양한 법률적 사고를 요구한다.

더 나아가, 만약 승객 한명이 바다에 던져져야 한다면, 과연 어떤 기준으로 그 한명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묻는다. 사회적 가치가 아직 상대적으로 적은 어린아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가장 적게 남은 노인, 사회 경제 기여도가 가장 적은 가난한 사람, 육지에 기다리는 가족이 전혀 없는 고아,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 범죄자,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환자. 한 생명의 경중을 타인이 판단할 수 없다는 당연한 윤리적 전제를 익히 알고 있는 학생들에게 교수는 결코 그들 대답의 옳고 그름을 알려주지 않는다. 다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한명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희생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강의가 끝날 때까지 온전히 학생들의 몫이다.

수천 수만건의 법 조항들이 아무리 복잡하게 얽혀 나열되어 있어도,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시비를 명확하게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법은 복잡성이라는 그 고유의 특성과 더불어 상대성이라는 오묘한 특징도 함께 갖고 있다. 그렇기에, 한가지 조항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이고, 그 다양한 해석을 논리적으로 연결하여 전체적인 사고 체제를 성립시키는 것은 순전히 해석하는 사람의 몫인 것이다. 그리고, 지식, 지능 그리고 경험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해석 과정은 늘상 편협, 불분명, 혹은 맹목적 비판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은 상대방의 그것과 결코 같을 수 없다.

소크라테스식 교육법이 한가지 확실하게 표방하는 것이 있다면, “틀린” 시선은 그저 “다른” 시선일 뿐이라는 것이다. 법률의 해석이 나와는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틀린 시선이라고 속단하기엔 너무나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존재하고, 적지 않은 경우 그러한 여지가 어떤이들에게는 희망적인 예외를 가져다주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공간을 통해 “다른 시선”의 자유를 함께 공유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