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지막 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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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명(시카고신학대 교수)

 

그를 처음 본 건 거의 10여 년 전이었다. 지역 관청의 잘못된 정책 집행으로 자신의 사업이 망하게 되었다는 그는 이미 몇 년 째 네이퍼빌 다운타운 옆 인도를 점거해 텐트 생활을 하며 공권력에 저항하는 투쟁을 홀로 벌이고 있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알고 있던 그의 옆모습을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본 것이다. 그의 텐트 생활이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시측과 헌법의 권리까지 주장하는 그와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 사이에 치열한 법리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의 텐트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존재를 다시 확인한 건 그로부터 6-7년이 지난 후였다. 네이퍼빌의 한인 슈퍼마켓 근처 교통량이 많은 한 도로 옆 인도에 낡은 텐트를 우연히 보았고, 그가 아직도 길 위에서의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작년 겨울이었는지 그의 텐트 앞에 박혀 있는 “Resist”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올 봄부터는 또 다른 팻말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예수의 부활을 뜻하는 “He Is Risen”이었다. 더 이상 그 앞을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도대체 무엇에 저항하면서 아직도 15년 넘게 길 위에서 홀로 투쟁을 벌이고 있는지 직접 묻고 싶었다. 지난 늦여름 유난히 더웠던 날, 그가 원했던 차가운 맥도날드의 루트비어 한 잔을 사들고 그를 만났다. 이미 근처 상점들에서는 그에 대한 출입 금지령이 내려 있었다. 그의 텐트는 간신히 법적으로 허용이 됐지만, 자신은 텐트 옆 주유소 소유의 땅도 근처 나무 하나를 경계로 침범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바로 그 나무 아래서 그의 얘기를 들었다.

그의 이름은 스콧 휴버였다. 2년제 대학도 나왔고, 성서대학에서도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는 스콧은 자신이 홈리스가 아니라는 말로 시작했다. 하지만 그 기나긴 세월 길 위에서 생활하면서 그런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달변이었다. 자신의 생활을 정당화할 법적인 근거를 쏟아냈고, 자신을 괴롭혔다는 검사와 판사 그리고 시청 직원들의 이름까지 거론하면서 그들의 오류와 불의를 지적했다. 그는 길 위에서의 생활 내내 법정 소송에 시달렸다. 유치장 생활도 했고, 낯선 이의 폭행도 있었고, 자신의 텐트는 불에 타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길 위에서의 삶을 접을 생각이 없고, 그를 찾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국가권력의 불의를 고발하고 저항의 대화를 나누는 게 자신의 사명이라고 했다. 페이스북 활동도 하고 가끔 글도 써서 올린다며 나에게도 일독을 권했다. 성경에 대해서 뭘 믿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도 거침이 없었다. 사도 바울과 예수의 사역, 초대교회에서 현대 교회의 문제까지 그는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풀어냈다. 내가 동의할 수 없는 해석이 많았지만, 그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정부의 도움을 받으면 더 편안한 생활을 할 수도 있지 않느냐 물었을 때, 그는 그런 제안도 받았지만 지금 자신의 삶이 더 자유롭고 정의로운 것이라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저항을 지지하고 물자지원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먼저 일어나잔 말을 하지 않았으면 그는 몇 시간이고 그의 분노와 저항의 항변을 이어갔을 것이다.

나는 스콧의 말이 다 진실일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의 저항이 오해 섞인 망상에서 출발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한 번의 만남으로 모든 걸 이해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의 저항이 미국에서만 가능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콧을 헨리 소로우나 잭 케루악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만의 원칙과 신념으로 긴 세월 비바람을 견디며 길 위에서 홀로 투쟁을 벌여온 그에게서 미국 정신의 단면을 읽는 건 무리일까. 다시 만나자는 작별인사를 나누고 뒤돌아서면서 내가 지금 마지막 미국인을 만났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