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만남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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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치홍 장로(미주장로선교회장)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다르게 펼쳐진다. 남편도 아내도 서로 잘 만나야지 잘못 만나면 불행해진다.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어떤이는 누구를 만나 행복한 삶을 사는가하면 어떤 이는 불행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있다.

성경의 인물 중에도 농부였던 엘리사가 엘리야 선지자를 만남으로 위대한 선지자 엘리사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젊은 목회자 디모데도 멘토였던 바울을 만나는 축복이 있었기에 그의 삶이 귀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만남과 인과관계가 조화를 이루는 사람은 인생이 아름답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만남의 축복이 있어야한다.

성도는 목사를 잘 만나야 하고 목사 또한 성도를 잘 만나야한다. 국민도 대통령을 잘 만나야 나라가 평안해진다. 만남의 주체는 서로 섬기고 소통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민족을 구한 왕후 에스더 또한 배후에 모르드개가 없었다면 에스더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모르드개와의 만남의 축복을 누렸기 때문에 에스더가 그렇게 휼륭한 여인이 될 수 있었으리라. 만남의 축복이 이처럼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만남의 축복을 누리도록 기도해야한다.

교회마다 전임 목회자가 은퇴하면 후임자를 구하면서 청빙공고를 하고 50-60명 후보자의 이력서와 설교 CD 를 받아 검토 작업에 들어 간다. 요즈음은 거의다 박사 출신들이 많다.

경력 좋고 설교 좋다고 설교에 반하고 미쳐서(?) 한번도 보지 못한 분을 목소리의 기교(?)만 듣고 성품을 알 수 있겠는가? 얼마 못가서 그렇게 좋다던 목회자가 떠나게 되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보면 객관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성도들인 교회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것은 순식간에 좋아서 설교만 좋으면 부흥이 그대로 되는 줄 알고 목사에게만 책임을 증가시키는 착각에 빠진 사람들의 잘못된 선택이 아닌가? 목회자는 말을 많이하는 사람들이다. 설교하고 심방가서 권면하고 때로는 지적도 충고도 한다. 하지만 성도들은 그 말에 영향을 받는게 아니고 목사의 존재 자체가 말이 되고 메시지가 되는 지를 본다. 설교만 잘 한다고 그 사람의 성품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정의와 공정의 갈등과 자당의 당리 당략으로 나라가 두동강이났다. 작금의 한국의 현실이 사회의 정의와 윤리와 원칙과 마지막 보루인 상식과 양심 마저도 무너저버렸고 하나님의 정의도 사라져버렸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말과 행동이 다르고 화합치 못하며 한쪽에만 치우쳐서 둘로 나누고 있으니 문제라고 본다. 지도자가 정신이 바르지않으면 나라의 기강이 흔들리니 바른 정치관, 바른 물질관, 바른 민족관, 바른 세계관으로 정치하고 한국 교계도 선지자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한다. 교회 부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된다. 설교도 잘해야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싫은 사람도 품어주고 세워주며 서로의 인간관계 형성이 잘 될 때 평안해지리라 믿는다.

이와 같이 인생사 모두가 만남이다. 우리 모두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시카고교계에 좋은 목회자, 좋은 스승, 좋은 멘토들이 일어나도록 기도하자. 성경은 말한다.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 들었더라”고.(왕상19: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