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올림픽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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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명(시카고신학대 교수)

 

 

평창 동계올림픽은 근대 올림픽 역사에서 가장 그 정신에 부합하는 대회로 기록될 것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려면 19세기 후반 평화운동을 펼쳤던 유럽인들이 중심되어 탄생시킨 근대 올림픽의 정신을 알아야 한다.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기간엔 무기를 내려놓았다는 고대 희랍의 올림픽을 재건해 세상의 평화를 도모하고자 했다. 그들은 전쟁이 국가들 간의 오해와 불신에서 출발한다고 보았고,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한 무대에서 갈고닦은 기량을 펼치면 평화를 위한 이해와 화합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정치적이라 취급하는 현대적인 감각으론 돈키호테적이고 순진한 발상임에 틀림없다. 실제 스포츠는 자본주의와 민족주의를 연상시키고, 승리와 패배나 명령과 복종의 군사문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스포츠를 통한 평화란 개념은 사실 어색하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그렇게 믿었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그들의 후예다. 아직도 평화를 올림픽의 정신과 사명이라 믿고 있다. 올림픽이 평화를 만들어낸 예가 없다는 냉소적인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올림픽 평화정신을 주장한다.

동계올림픽을 평창에 유치하기 위해 한국에서 내세운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스포츠로 분단을 넘어 평화를 꿈꾸는 올림픽을 만들겠다는. 분단의 고통을 아직도 안고 있는 한반도, 그것도 휴전선을 지척에 둔 평창에서의 올림픽은 상징성이 있었다. 모든 올림픽의 개폐회식은 세상의 평화와 화합을 주제로 삼지만, 지난 주 평창올림픽의 개막식은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간절하고도 강력하게 표현해냈다. 더군다나 개막식이 열리기 불과 한달전만 해도 한반도엔 전쟁의 소문이 무성했고, 평창올림픽의 안전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나라들도 있었다. 평화 올림픽의 상징성을 살리고 실질적인 안전문제도 해결하기 위해선 북한이 올림픽에 참여해야 했다. 한미군사훈련의 일시적인 중단도 필요했다. 결국 세 나라의 협조로 올림픽은 평화롭게 시작할 수 있었고, 개막식 행사를 통해 분단의 현실과 평화를 향한 절박함을 세계에 알렸다. 그뿐 아니었다. 남북한 선수들은 한반도기를 들고 동시에 입장했고,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까지 성사시켰다. 한국 내에선 단일팀 구성으로 남한 선수들이 정당한 기회를 빼앗길 것이란 불공평 논란이 거셌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이보다 더 나갔다. 남북단일팀에게만 팀 엔트리 숫자를 늘려주는 국제적인 불공평을 자처했다. 참여한 국가들이 모두 한반도 평화의 절박함을 깨달았는지 아니면 올림픽의 평화정신을 이해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IOC의 결정에 큰 문제를 제기한 나라는 없었다. 그만하면 평창올림픽은 이미 성공한 것이다. 최소한 IOC의 입장에서는.

한반도기를 앞세운 동시입장과 아이스하키 단일팀에 반대하는 비난과 정치공세가 심할 때 청와대 대변인은 이런 말을 했다. “한반도가 전쟁이냐 평화냐의 갈림길 앞에서…언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평화의 불씨를 살리려 애쓰고 있다.” 개막식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평화를 그토록 간절하게 외친 올림픽 개막식은 기억나지 않는다. 남북 아이스하키 선수 두 명이 성화를 들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갈 때, 한반도에는 바로 그런 소녀들이 살고 있고 한반도의 평화는 그들을 위한 것이란 사실을 전 세계의 시청자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개막식은 존 레논의 ‘Imagine’이란 노래를 들려주면서 평화에 대한 상상력을 촉구했다. 진부한 선택이라 할지 모르나,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내친김에 평화에 관한 레논의 다른 곡도 얘기해 보자. <All We Are Saying>이란 곡인데, “All we are saying is give peace a chance” 란 부분이 계속 반복된다. 레논의 노래이고 평화를 꿈꾸는 사람들의 기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