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왜 <벌레소년>인가?, 왜 <평창유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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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후(TV탤런트/네이퍼빌)

 

<렙>이 한국에 상륙한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그러나 왠지 우리의 혈관 속에는 흥과 끼를 불러 일으키는 긴 사설 짧은 사설, 자진모리 중중모리 하면서 고저장단의 알갱이들이 이미,  넘쳐 나 있었기 때문에 전연 낯설지 않은 분야인 것은 물론, 일단 시동이 걸리면 한국의 비보이가 그렇듯이, 그리고 한국의 여자골프가 그러 했듯이, 세계에 우뚝 서게 되는것은 시간문제 라고 볼 수 있다. 캐나다 출신, 유태계 흑인레퍼, 드레이크<본명 Aubrey Drake Graham>는 삼성의 어느제품 브렌드가치를 훨신 능가 할 정도의 억만장자가 되어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엉뚱한 음모론 속에 휘말린 적도있었다. <이희호여사가 돈세탁을 하기위하여 드레이크와 결혼했다>는 가짜뉴스가 한때 네티즌의 관심을 달구었던 아이러니 말이다. 이렇게 복잡한 억측구조의 사회현상을 보면서 오늘 우리들 정신세계의 현주소가 어디쯤 와 있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왜<평창유감>일가? 지난 달 30일 오후 네티즌이 올린 노래 <평창유감>이 현재조회수 51만을 기록 하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왜 벌레소년일가? 어느날 갑자기 자고 깨어나 보니 자신에 몸이 여러개의 다리가 달린, 괴이한 딱정벌레로 변해있는 <그레고리오 잠자>,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소설을 패러디 한것은 혹시 아니 었을까? 그의 사설들이 정치를 떠난 젊은 층들의 땀 대신, 양잿물 같은 이지러진 처방, 그렇게 만들어 내고 있는 백수건달의 낭떨어지 앞에 선 젊은이들이, 그야말로 하늘에 삿대질하고 땅에다 머리를 대며, 등과 머리로 돌고, 딩굴고 발버둥 치는 어린아이들과 같은 절규가 저절로 흘러 넘쳐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던 그 본능적인 반동형성은 아니었을까?. 벌레소년이 자신의 인터뷰에서 밝힌것을 보면 벌레 같은 세상에서 나도 한마리 벌레가 아니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해서 붙여 놓은 이름이란다. <남의 탓이 아니라 바로 내 탓이라는 프란츠 카프카의 겸손한 지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물론 소년은 아니지만 때묻지 않은 영혼을 소망 했기 때문이며 2030이나 4050이 아니라고는 말 못한다는 암시를 넌지시 주고 있다. 그의 렙 <평창유감>은 첫번째 작품이 아니다. <NL의 몰락>,<빨갱이 놈>,<원숭이 폭동>,<나는 일베충이다>, <종북의 시대>, <나는 멧돼지가 싫어>,등등, 이외의 다수가 있지만 <도둑이 제발이 져린다>는 좌파들의 몰매와 협박의 지우개를 가지고 달겨드는 바람에 잠시 익명을 고수 하겠단다.<Fucking 평양올림픽>같은 신조어와 함께, 삼일 만에 창작해낸<평창유감>속에는<인민민주주의는 안하무인>,<폭락하는 비트코인>, <매일 자살꼴만 꼴인>,<왜 북한에게 쩔쩔 맵니까?>, <왜 김정은의 눈치 봅니까?>, <니들 역사공부 다시 해야 되>,등 점잖은 소구법과 함께 쌍욕을 마다않고 드리대는 고저장단을 듣고 있으면 사실, 저절로 신명이 나게 하는 노래다. 수평선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돛단배의 마지막 마스트를 보는 우리들 백성에게는 그야말로 씻김굿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참새가 죽어도 짹 한다>는데 대한민국이 소멸되어 가는 과정속에서 이 정도의 이벤트도 없다면 우리는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닐것이다. 주객이 전도된 평창올림픽, 70여년 동안 하루도 멈춤이 없는 화적떼들에게 눈 번히 뜨고 날치기당한 평창올림픽,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날고기의 제사상, 이걸가지고 어떻게 세계사람들에게 신성한 올림픽의 축제라고 감히, 강변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