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은퇴와 종교

746

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시작은 거의가 옹담샘이다. 흘러흘러 밑으로 내려가는 물은 환경에 따라 직선으로 흘러 가지는 않는다.  점점 더 모여서 강한 물줄기를 만든다. 강한 장애물을 만나면  피해서 흐른다.  뭔가 만만한 것들을 만나면 그냥 밀고 나간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인생도 무언가 장애물이 나타나면 피해서 앞으로 나아가던가, 장애물을 제거하면서 목적지로 향한다.  이렇게 열심히 밑으로 흐르다가, 흐름의 속도가 갑자기 느려지게 된다. 바다에 다다른 거다. 이 흐름의 느림이 은퇴를 의미하는 거다.

많은 사람들은 은퇴후에 자고 일어나면 갈 곳이 없다. 꼭 해야 할 일도 없다. 모든게 타의에 의하여 정지가 된 느낌이 든다. 이렇게되면 인간 본연의 내면과 외면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또한 은퇴 후에는 누구나가 느끼는 진동이 있다. 내면의 진동도 있을 수가 있고, 외면의 진동을 느낄 수가 있다. 여기서 갈라지는 느낌이 있다. 이게 뭔고하니 외로움이라는 거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외로움을 갖는 건 아니다. 근본적인 것은 성격이다. 은퇴를 마치 해방된 것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어느 누구는 자신을 옭아 메는 구속의 테두리 속으로  들어 가는 사람도 있다. 모두들 자기가 선택을 해 놓고는 그에 대한 책임을 안지려는 사람은 죽는 그 날까지 외롭게 살아 가게 되어 있다. 이 외로움을 이겨 낼 방법 중에 하나가 종교를 갖는 것이다. 본인도 모르게 지나온 삶을 반추(反芻)하고자 함이 있는 거다.  영성이나 초월적인 자아 경험을 원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봉사와 교제의 경험을 원하는 경우도 있다. 은퇴로 인한 외로움의 해결을 종교로 풀어 보려는 사람들도 많다.

인류학적으로 보면,  종교는 모든 문화권에서 보여지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인류 학자 에드워드 테일러(Edward Tylor 1932-1917)에 의하면, 모든 원시적인 신앙에는 애미니즘(Animism) 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애미니즘이란 인간과 그 어느 세상이 비신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를 공유한다는 믿음이다. 다른 말로 하면, 영혼, 유령, 심령, 천사 등등에 대한 관념적인 표현이다. 애니미즘은 각각의 사물과 현상 즉, 무생물계에도 정령(精靈) 또는 영혼,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영적인 힘 또는 존재“가 깃들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은퇴 후에도 종교를 고이 간직한 사람들은 조금 다르다.  종교는 각자의 마음을 정결케 치유하고, 탁한 마음을 보호 해 주는 기능이 있다. 의료와 복지가 발달이 된 지금도 종교는 우리를 보호 해 주고 있다. 종교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규정하고 고통의 의미를 설명해 준다. 광야에서 세가지 시험을 받은 예수의 이야기나,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석가모니가 체험한 고난은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종교활동 속에는 유익한 정보도 있다. 또한 서로를 결속 시켜주는 힘이 있다  종교는 곧 사회의 정체성이다. 종교단체가 구제와 봉사에 힘쓰는 이유는 전도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인류사 속에 포함된 종교의 오랜 임무로 봐야 한다. 종교의 틀 속에는 직분이란게 있다. 이는 갓 쓰고 도포 입은 노인이 부채하나 더 들고 있는 것과 같다. 그것이 종교와는 깊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직분이 없다하여 부끄러운게 아니다. 직분을 가지고 세상속에서 헤메이는 자는 진정한 종교인은 아니다.

노년기에 갖게 되는 우울과 불안, 고독은 종교적인 활동을 통해서 도움을 받게 된다. 종교가 노년에 나쁜 영향을 주었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 때로는 성가나 불경 소리를 들으며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것도 노년의 멋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