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좌충우돌 채플린 이야기(12)…내 안에 울고 있는 내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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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 목사(하나님의 성회 시카고교회 부목사)

 

핑계 없는 무덤이 없듯 삶에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없다. 5살 여아가 혼자 고개를 떨군 채 땅을 쳐다보다 하늘을 올려보았다. 시선을 멀리 흘러 보냈다. 의도하지 않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부모형제와 헤어져 할머니 댁에서 살게 되었다. 왜 이곳에 남겨졌을까? 가난한 부모가 일해야 먹고 살기에 어린 딸을 시골 친정 집에 맡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5살 아이의 이해를 바라기엔 무리한 요구였다. 동네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오시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칭찬을 받았다. 꼬마의 재롱에 주름진 할머니의 얼굴에 눈물 젖은 웃음 꽃이 피어났다. 그래도 엄마가 보고 싶어지면 담장 밖에 나가 먼 곳을 바라보곤 했다. “오늘은 엄마가 데리러 올까?” 그러나 기적은 오늘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날 화들짝 놀랄 일이 생겼다. 흙으로 된 담벼락에 기대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뱀이 담벼락을 타고 아이를 향해 음흉하게 기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심장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듯 놀라 겁에 질려 바닥에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하지만… 하지만…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듣고 달려와 위로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비 오는 날, 마당에 나갔다가 청개구리 한 마리를 발견하고 용케도 붙잡았다. 친구가 없었던 아이는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 개구리와 한참을 놀았다. 시간이 지나 재미가 없어지자 어떻게 했는지 기억에 없지만, 개구리를 죽이고 사지를 찢은 후 불쌍하다고 눈물을 흘리며 돌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악어의 눈물이런가! 5살 인간에게 숨겨진 잔인함이여! 가끔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할머니의 무릎에 누워 개구리의 돌무덤이 비에 쓸려갈까 걱정을 하곤 했지만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 가끔은 개구리를 죽였다는 사실에 자신 안에 감추어진 잔인성에 소스라치게 놀라 두려움을 느꼈다.

아이의 의식 속에는 없지만, 나중에 오빠를 통해 들은 이야기다. 어느 날 가족들이 시골 할머니 댁에 왔는데, 아이가 하얀 밀가루를 얼굴에 바르고, 할머니의 하얀 소복을 입고 거울을 보며 춤을 추었단다. 오빠는 동생이 커서 무당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5살 아이는 신내림 대신 성령의 세례를 받았고, 가출과 자살의 유혹을 극복했다. 예술가 중 빈곤과 절망의 짧은 생애를 살면서 80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지만, 살아 있는 동안 하나의 작품 밖에 팔지 못했던 가난한 예술가이자 정신적 고통으로 우울증을 겪다 자살했다고 알려진 빈센트 반 고흐처럼 자신도 고독하게 살다 21살에 생을 마감할 운명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다 믿음이 부족한 탓에 운명이 빗나갔다.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고 발길에 채여 광야 길을 거쳐 목사가 되었고, 지금은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성인아이는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뱀을 가장 싫어하고, 고흐의 그림을 가장 좋아한다. 언젠간 고흐처럼 영감 넘치는 그림을 그리는 꿈이 있다.

채플린 인턴 수업에서 ‘가장 어렸을 때 기억나는 이야기’를 발표한 내용이다. 이야기 신학이다. 발표 후 질문과 토론으로 피드백이 넘쳐난다. 첫째, 경험에 대한 성찰을 한다. “이야기를 듣고 어떤 느낌이 드는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발표한 사람은 지금 어떤 생각이 들고 감정을 느끼는가?” 등이다. 둘째, 이야기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가? 셋째, 경험의 의미를 성찰 한다. “이 이야기의 의미는 무엇인가?”, “신학적인 주제나 성경에서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가?”,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 현존하시는가?” 등이다. 넷째, 목회적 돌봄의 성찰을 한다. “이야기가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목회적,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등을 나눈다.

무의식에 갇힌 이야기를 꺼내 당시의 감정을 나누고 신학적 해석을 하는 과정이다. 질문과 성찰을 통해 사건의 의미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모든 동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눈물을 흘렸다. 그럼에도 그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서 아셨고 함께 하셨음을 발견하며 위로와 치유를 경험했다. “상처는 꺼내기 전엔 치유되지 않는다”고 한다. “청개구리야! 정말 미안해!”

당신은 어떤 사연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