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좌충우돌 채플린 이야기(14)…신발 바꿔 신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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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 목사(하나님의 성회 시카고교회 부목사)

 

병원에 BH(Behavioral Health) 병동이 있다. 감성 치료, 재활 치료,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우울증이나 스트레스로 인해 삶의 통제가 되지 않아 정신과 마음이 병든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병원에서 유일하게 주일예배가 있는 병동이다.

기억에 남는 환자는 30대 여자 환자다. 일주일 전에 셋째 아이를 낳아 직장을 그만 두고 육아로 인해 산후우울증을 겪어 남편 손에 이끌려 입원했다. ‘일주일 된 아기를 두고 몸이 회복이 안된 아내를 어떻게 입원시킬 수 있을까?’, ‘세 아이는 누가 돌보지?’ 지금의 심정을 물으니 “슬프고, 아이들이 보고 싶고,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환자의 상황에 공감 외에는 어떠한 조언과 도움도 줄 수 없었기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 도와주기를 원하느냐?” 물으니 기도를 요청해 기도한 후 자리를 떠났다. 한동안 이 환자가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일주일 후 다른 환자 방문으로 병동에 갔다가 그녀를 만났다. 훨씬 기분이 좋아 보였고 이틀 후 퇴원하게 되어 좋다고 했다. 젊은 여인의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우울증은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심각한 마음의 병으로 다른 병처럼 치료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울증을 겪는 이에게 자칫 잘못된 조언을 하다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우리가 우울증 환자에게 하면 안 되는 위로의 말이 있어서 나눠보려고 한다.

첫째, “힘내”이다. 사실 “힘내”라는 말은 문제가 없지만 우울증 환자들은 이미 힘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의 동력을 상실한 상태다. 정신과 전문의 캐플린 박사는 “상대가 힘을 낼 수 있는 입장이었다면 벌써 기운을 차렸을 것”이라며 비슷한 말이지만 ‘힘들었겠다’ 정도의 호응을 해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한다.

둘째, “네가 감정을 다스려야지”이다. 그들은 스스로 우울한 감정을 통제할 수 없어 우울증에 빠진 경우다. 그런 환자에게 감정을 다스리라는 조언은 상대의 우울증을 과소평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셋째, “가족을 생각해”, “네 아이를 생각해”,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해” 등의 말 역시 그들을 더 우울하게 만든다. 조언자는 그들이 삶의 동력을 찾도록 가족을 거론했겠지만, 그들은 자신을 책망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자신과 맞지 않는 선택을 해오며 우울증이 심화됐을 수도 있다.

넷째, “긍정적으로 생각해”, “네가 생각하기에 달렸어” 이다. 캐플린 박사는 “우울증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위의 조언은 우울증을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어쩌면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조언은 우울증 환자에게 소용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다섯째, “어떤 심정인지 알아”이다. 만일 당신이 우울증을 겪고 있거나, 그것을 극복한 경험이 있다면 우울증 환자와 서로 공감하며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면 그저 들어주는 편이 낫다.

여섯째, “너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있는 사람도 있어”이다. 이 말은 우울증 환자나 가벼운 우울감을 겪는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얻는 에너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도 않고 오래가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우울증 환자에게는 “말보다 행동이 더 큰 위로가 된다”고 말한다. “그렇구나. 힘들었겠다” 그 이상의 말 대부분은 큰 도움이 되지 않고 그저 함께 있어 주고 상대가 겪는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내가 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말과 행동이 도움이 될까?” 생각해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어떠세요?’, ‘정말 힘드시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