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좌충우돌 채플린 이야기(20)…무엇이 그녀를 변하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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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 목사/하나님의 성회 시카고교회 부목사

 

고요한 한밤중 호출이다. ICU 병실 간호사가 전화를 한 것이다. 무슨 상황인지 한참을 이야기 하는데 요점은 ‘다루기 힘든 환자가 있으니 와서 이야기 좀 해달라’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환자이기에? 긴장한 채 ICU 병실로 총총 걸음을 옮겼다. 병실에 도착하니 간호사 한 명은 병실 안에, 한 명은 병실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를 묻자 ‘환자가 신경질적이고 싸이코 기질이 있는 것 같다’고 나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나도 속으로 외쳤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병실로 들어가 내 소개를 하고 “어디 아프신 곳이 있으세요?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라고 여쭤 보았다. 환자는 70대의 백인 여성으로 아주 건장한 체격을 지니고 있었는데, 한쪽 다리를 다쳐서 깁스(Plaster Cast)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요구는 침대에 오래 누워 있어서 너무 힘이 드니 자신을 옮겨서 의자에 앉혀 달라는 것이었다. 여러 번 간호사에게 요구를 했지만, 주말이라 도와줄 스텝들이 없어서 안 된다며 간호사들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무시한다는 것이다. 환자의 체중을 짐작해 볼 때 장정 서너 명은 있어야 족히 가능한 일이었다.

나에게도 의자에 앉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저는 채플린입니다.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라서 마음대로 환자를 움직이도록 도울 수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라고 내 입장을 설명했다. 환자는 어느 정도 포기했는지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 뒤 대화를 나누면서 환자는 웃음을 되찾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간호사들이 할 일이 많고 바쁘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 환자에 대해 왜 ‘신경질적이고 싸이코 같다’고 했는지 의문이 생겼다. ‘기도해 주기를 원하냐?’고 물으니 ‘좋다’고 해서 기도를 하고 ‘마지막으로 뭐 더 필요한 것이 있냐?’고 물으니 ‘아들에게 전화를 걸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환자의 핸드폰을 찾았지만 결국 못 찾아서 나의 핸드폰으로 아들의 연락처를 받아 전화 연결을 시켜 주었다.

한참 동안 엄마와 아들의 대화를 조용히 옆에서 들었다. 벌어진 상황에 대한 넋두리 한마당이 펼쳐졌다. 그래도 아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는지 통화후 고맙다며 다음 날 아들이 오기로 했단다. 때로 믿는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문제 해결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드린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가 원하고 기도한 데로 상황을 바꿔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신다.’는 것이다. 비록 그 환자의 소원이 성취되진 않았지만, 평온과 웃음을 되찾게 되어 작은 보람을 느꼈고, 환자의 불평이 수그러들고 얌전해지니 간호사들도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날 밤 병원에서 밤을 지새고 아침 퇴근 전에 다시 한번 그 환자의 병실을 찾았다. 보통 응급상황이 아니면 한번 본 환자를 다시 방문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왠지 한번 더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굿모닝! 좋은 주일 아침이네요. 어제 밤 어떻게 주무셨나요? 많이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도움이 필요하시면 간호사에게 채플린을 불러 달라고 하세요. 다른 채플린이 와서 도와 드릴 것입니다.” 그러자 환자는 “고맙습니다. 그런데 어느 지역의 교회를 섬기고 있나요? 제가 그 교회에 기부(Donation)를 하고 싶습니다. 아침에 아들이 오면 기부하라고 하겠습니다. 명함이 있으면 한 장 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환자의 제안에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구나’ 감탄했다. Mission and Spiritual Care Department 명함에 나의 이름을 적어 드리면서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정말로 기부를 하고 싶으시면 병원에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마음 속으로는 ‘이 환자가 기부를 하게 되면 꼭 나의 이름을 말해 주어서 내가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 좋겠다.’라는 속물근성이 꿈틀거렸다. 환자 중 기분 좋은 만남으로 기억되는 환자다. 그 뒤 병원에 기부를 했는지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