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좌충우돌 채플린 이야기(21)…주객전도(主客顚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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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 목사/하나님의 성회 시카고교회 부목사

 

토요일 오후 5시. 근무를 위해 병원에 왔다. 방문할 환자들의 명단을 확인하고 컴퓨터로 환자의 의료 기록을 찾아보았다. 주로 이름, 병실, 나이, 종교, 인종, 병명, 입원 날짜, 보호자 인적 사항 등을 확인하는데, 관심 있게 보는 것이 종교와 병명이다. 의학용어가 생소해 주로 사전을 찾아서 확인하지만 발음조차 생소한 경우가 많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환자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환자는 60대 중반으로 암에 걸려 입원한 백인 여성이다. 병실에 방문해서 채플린이라고 인사를 하자 환자가 보인 반응이 의외였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이렇게 젊고 예쁜 사람이 채플린이지요?”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혹 식사하다가 소화가 안되고 속이 메스꺼워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긴 한다. 나도 분에 넘치는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보통 채플린하면 나이 지긋하고 머리는 희끗하고 얼굴에 수염이 있는 그런 사람을 연상했거든요.” 했다. 나는 “그저 젊어 보일 뿐 결코 젊지 않다고, 대학교 3학년 딸과 고등학교 졸업반 아들도 있다.”며 굳이 나도 나이는 먹을 만큼 배부르게 먹었노라 했다. 그러면서 나의 삶을 털어 놓았다.

한국에서 왔고, 유학생으로 미국 온지 만 12년, 목회 상담으로 D.Min 학위를 마쳤고, 교회 사역하다 채플린이 되기 위해 지금 인턴 과정 중이고, 영어 실력이 부족하고 문화에 대한 이해가 약해 어려움을 겪고 있고, 한번 온콜을 하면 주말에는 15시간 이상 병원에 머물러야 한다는 이야기 등.  그런데 그녀가 살아온 이야기는 더 나를 놀라게 했다. 현재 교회는 나가지 않지만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늘 기도하고 말씀을 본다고 했다. 이혼하고 아들 한 명이 있단다. 어려서부터 성령을 체험을 했고, 예언의 은사를 받았고, 어떤 때는 꿈을 통해 계시를 받기도 했고, 죽음을 피했던 경험들을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했다.

나에 대해서 예언자적 선포를 했다. ‘채플린으로서 정말로 좋은 사역을 하는 것이니 끝까지 잘 견디고 해 보라고, 때로는 주변에서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고, 격려해 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영어가 부족한 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마음에 열정이 넘치기 때문에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유창한 영어가 아닌 채플린으로서 등장하는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위로와 도움을 주는 영적 파워를 가지고 있으니 가슴을 펴고 자부심을 가지라’며 오히려 나를 격려해 주었다. ‘오늘 나를 만난 것이 너무 기쁘고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분에 넘치는 말을 했다. 그래서 지금 당신이 나에 대해 한 말을 글로 써 줄 수 있겠냐고 했더니 좋다며 글로 써 주기까지 했다. 그때 간호사가 와서 그 환자의 검사 결과가 문제가 없다는 말을 전해 주었고 함께 기뻐하며 감사 기도를 드렸다. 그녀는 자기가 일하는 직장의 주소를 알려주며 한번 꼭 찾아오라는 말과 함께 포옹까지 해주었다.

오늘의 방문은 주객전도다. 채플린과 환자의 역할이 바뀐 듯 하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혹 “그 환자 사기꾼이나 정신병자 아냐?”, 그리고 “어떻게 채플린이 거기에 속아 넘어갈 수가 있어?” 라며 나의 어리석음을 탓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한편, 뒤집어 생각해보면 나는 채플린으로서 그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그 사람 자체를 진심으로 받아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삶의 고백이 어느 정도 사실이고 신빙성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내겐 위로와 격려가 되었고, 다시금 일어설 용기와 최선을 다짐하는 동기를 부여했다. 예기치 못한 만남에서 환자의 입을 통해 ‘하나님은 나의 상황을 모두 알고 계시고 위로해 주시는 분, 나로 인해 기뻐하시는 분, 그리고 나를 사용하시길 원하시는지 분이시다’는 것을 경험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며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에 가슴이 벅찼다. 그 분이 아신다는데 뭘 더 바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