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좌충우돌 채플린 이야기(24)…내 생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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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 목사/하나님의 성회 시카고교회 부목사

 

신이 인간의 언어를 만들 때 아내를 잃은 남편은 ‘홀아비’라 정했고, 남편 잃은 아내는 ‘과부’라 정했고, 부모 잃은 자식은 ‘고아’라 정했다. 그럼 자식 잃은 부모는? 그 아픔이 너무 커서 부를 마땅한 호칭이 없었다고 한다. 자신이나 가족이 아플 때 찾아와 주는 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되는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을 방문할 때는 많이 망설이게 되는 이유는 뭘까?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날마다 그런 환자들을 만나야 하는 호스피스 채플린은 어떻게 환자나 그 가족들을 대할까? 죽어가는 환자나 그의 가족을 돕는 호스피스 채플린의 사역이 귀하고 보람 있음은 분명하지만, 늘 죽음의 그림자를 느껴야 하기에 우울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고 한다. 호스피스 채플린은 환자의 서비스가 시작되면 일주일 내에 첫 방문을 하고, 한 달에 한.두번 정도 방문한다. 방문시간은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환자가 살아온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환자가 기독교인이면 성경을 읽어주거나 좋아하는 찬양을 들려주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환자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오랜 시간 동안 그리고 여러 번 만나기 때문에 친밀감이 높고 환자의 가족과도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죽은 환자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도 한다. 병원 채플린과 호스피스 채플린의 차이가 여기에 있고, 두 가지 사역을 경험한 채플린에게 물으니 호스피스 채플린 사역에서 더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어느 날 호스피스 채플린에게서 전화가 왔다. 90세된 여자 환자가 돌아가셔서 환자의 집에 가야 하는데 함께 가보겠냐고 했다. 채플린이 어떻게 유가족들을 돕는지 궁금하여 동행(쉐도잉) 했다. 환자가 돌아가시면 보통 소셜 워커를 통해서 채플린에게 연락이 온다. 죽은 환자의 집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 위로하고 당황해 하는 유가족들을 돕는 것이 채플린의 역할이다. 이동 하는 차 안에서 환자의 나이, 병명, 가족관계, 그리고 종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환자의 집에 도착해서 유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나는 호스피스 사역을 배우는 학생으로 소개 되었다.

죽은 환자는 거실에 놓여 있는 침대 위에 잠을 자듯이 평안하게 누워 있었고, 딸과 사위,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남동생이 지키고 있었다. 죽은 환자의 또 다른 자녀들과 손자.손녀들이 오는 중이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자신들의 이름과 고인과의 관계를 소개하며 무거운 침묵을 부수었다. 채플린은 고인이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기억에 남는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고인이 그들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였는지 등의 질문으로 분위기를 밝게 바꾸어 갔다. 가족 중에서 앨범을 펼쳐 들고 사진을 설명하며 이야기를 하는 이도 있었다. 재미있는 추억을 떠올리며 함께 웃음꽃을 피웠다. 한국적인 정서와 참 많이 다름을 경험했다. 상황에 따라 간단하게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후 간호사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장의사에 연락을 취하고 그곳에서 시신을 가지러 올 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보통 환자 집에 머무는 시간은 1시간에서 두세 시간이 걸린다. 장례식장에 가보면 죽은 환자의 유가족들이 통곡하며 우는 경우를 보기 힘든데 죽음에 대한 개념이 다른가 보다.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지 않는 모든 환자는 사망 전후로 병원으로 옮겨져 의사의 확인을 거쳐 사망진단서를 발급 받는다. 지병이 있었거나 연로하셔서 돌아가신 경우에는 상관없지만, 젊은 사람이 갑자기 죽은 경우는 검시관이 시신을 확인하고 타살 가능성 여부를 확인 해야 한다. 이렇게 사람이 죽을 때 쓰는 비용이 미국의 교육비 예산보다 더 많다고 한다.  오늘 문득 내 생의 마지막 모습이 어떨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