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좌충우돌 채플린 이야기(27)…창살 없는 감옥으로부터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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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 목사/하나님의 성회 시카고교회 부목사

 

VA(Veterans Affair:군인병원)에 몇 달 동안 토요일 성경공부에 참석한 경험이 있다. 인원은 10명에서 15명의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대로 주로 흑인이었다. 그들은 약물중독이나 군대에서 성적 학대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었다. 1시간 반 동안 기타 연주에 맞추어 힘차게 찬양을 부르고, 성경 순서를 박자를 넣어 외우기를 반복했다. 단순한 것에 행복해하고 열정을 쏟는 그들의 모습에 정겨움이 묻어났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손을 맞잡고 기도하는 순간은 천사의 모습이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대로 살려고 몸부림 치는 모습에 경건함을 느꼈다.

그럼에도 아픔과 견디기 힘든 현실의 무게를 감히 측량할 수 없기에 하루 하루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는 궁금증으로 남았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으로는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하고, 내가 감히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

미국에서 군인이 되는 것은 의무가 아닌 자원하는 것이다. 그들이 군인으로 군대에 자원 입대한 나이가 고작 17, 18 세였다.  베트남 참전 군인들은 그 시절의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상황이 그들을 군대에 입대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 어린 나이에 전쟁터에서 감당했던 일들은 장성한 성인들도 감당하기 힘겨운 일이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것을 봐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 신앙 양심을 버리고 명령에 따라야 했다. 거기에 따른 자책감, 죄책감, 원망, 자신을 용서할 수도 없고, 사회의 탓으로 떠넘길 수도 없었기에 고스란히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직장을 잃었고, 가정은 파탄 났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술과 마약에 중독되었고, 노숙자가 되기도 했고 결국엔 정신적인 병으로까지 추락의 날개를  달았다. 그들의 바램은 회복이지만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올 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아직까지도 군인들의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다.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혹은 MST(Military Sexual Trauma)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사망이나 심각한 위협을 겪은 후 혹은 자연적(예, 허리케인) 또는 인위적 (예, 심한 자동차 사고) 재해를 경험했을 때 나타나는 병적 증상이다.  MST는  전투에 참전한 동안 성적 또는 신체적 폭력 및 강간이나 기타 폭력행위의 경험 또는 목도 한 것에서 오는 트라우마이다. 악몽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서 그때 경험한 강한 두려움, 무기력증 또는 공포가 이들의 뇌리를 사로잡는다. 이들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우울증에 괴로워하며, 쉽게 화를 내며, 몹시 격노하며, 두려움에 떨며, 악몽을 호소하며, 자신들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괴로워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는 사람은 그 상황이 재현되면서 원치 않는 기억이 빈번하게 되살아 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시끄러운 불꽃놀이는 전투의 재현 현상이나 현장감을 유발하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은신처를 찾거나 바닥에 엎드리게 된다. 현재의 주변 상황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드물게는 사건을 단순히 기억하는 게 아니라 사건이 실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회상) 다시 체험하곤 한다고 한다.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 아픔과 상처와 허무라는 고통을 짊어지고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진정한 인간으로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까? 많은 군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관계하지 않고 그들의 삶에 관심이 없으시고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누구의 잘못인가? 전쟁에 참전한 개인의 잘못인가? 전쟁을 벌인 인간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누구를 탓하고 책임을 묻는다고 그들에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들과 그들 가족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고통에 공감해주고, 아물지 않은 상처에 위로와 격려를 헤주고, 말씀과 찬양과 기도를 통해 치유와 회복으로 나아가도록 함께 동행해 주는 필요한 듯 하다. 이것이 채플린의 사명이자 빚진 자들의 몫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