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좌충우돌 채플린 이야기(31)…과거 아픈 상처와의 화해

1165

최영숙 목사/하나님의 성회 시카고교회 부목사

 

전제 채플린이 모여 점심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슈퍼바이저가 각자의 취향에 대해  “Are you a dog person or a cat person?”라고 물었다. 자신의 취향을 말하며 기르는 애완동물 이야기를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로 왁자지껄 웃음꽃을 피웠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뭔 개(고양이) 소리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영어 문장은 해석이 되지만 문화를 모르니 단순한 질문에 당황스러웠고 바보처럼 느껴졌다. 스텝 채플린에게 질문의 의도를 물으니 “어떤 동물 애호가냐?”는 뜻이란다. 이런 유치한 질문으로 대화를 하며 의미를 찾고 웃어대는 그들이 신기했다. 내 차례에 “I am a dog person” 이라 답하며 그 순간을 모면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어떤 동물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그 후 채플린 인턴 수업 중 어릴 때 추억을 발표하게 되었는데 “I am a dog person”의 제목으로 발표했는데 사연은 이렇다.

7살쯤 경기도의 시골 마을에서 살았다. 우리 집은 스레트 지붕에 양철 대문이 있었고, 조그만 흙 마당이 있었다. 마당에 우리를 만들어 돼지 두 마리, 토끼 두 마리, 그리고 강아지가 한 마리를 키웠다. 부모님은 돼지를, 오빠는 토끼를 그리고 나는 강아지를 맡았다. 강아지 이름은 ‘해피’였다. ‘해피’는 작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의 가장 좋은 친구였다. 어느 날 우리는 ‘해피’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고 얼마 후 작고 여린 두 마리의 강아지가 태어났다. 강아지는 너무 부드러워 살짝 건드려도 톡하고 터져버릴 듯했다. ‘해피 가족’을 바라보는 것이 이름의 의미처럼 큰 행복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해피’가 돌아다니다 잘못된 (쥐약이 든) 음식을 먹고 죽고 말았다. 그 사건은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7살짜리에겐 큰 충격이었다.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새끼를 두고 죽어가던 어미 개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 엄마가 되어 보니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가슴이 무척 아팠을 것 같다. 나는 마당에 땅을 파고 ‘해피’의 작은 돌무덤을 만들고, 나무를 엮어 십자가를 만들어 꽂아 주었다. 7살 꼬마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무덤 앞에서 “해피’에게 약속했다. “내가 너의 아기들을 꼭 지켜줄게.” 엄마 잃은 핏덩어리들을 방으로 데려와 품에 안고 ‘내가 지켜줄게’하며 내 배 위에 강아지들을 올려 놓았다.

깊은 밤! 7살 꼬마는 세상을 다 덮을 수 있는 눈꺼풀의 무게를 감당치 못하고 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내가 잠들면 강아지들이 위험해. 잠들면 안돼.” 참으려 애썼지만 불가항력이었다. 결국 나는 깊은 잠의 수렁에 빠졌다가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지만, ‘해피’의 분신들은 밤새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 어미를 찾아 떠나 버렸다. 불안이 현실이 되었다. 슬펐다. ‘해피’의 죽음도 슬펐지만, ‘해피’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더 마음 아팠다. 40년이 훌쩍 넘게 지났는데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니 “해피 가족의 불행한 죽음”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미안함이 무의식 속에 남아 있었나 보다. 함께 피드백을 나누던 동기들도 나의 눈물과 죄책감에 공감과 격려와 위로를 해주었다. 그 경험이 내게 “긍휼의 마음을 갖게 했고, 7살 꼬마의 눈물을 보신 하나님께서 목회자의 소명을 주셨다”고 말해 주었다. 오랜 기억, 과거 아픈 상처를 끄집어 내고 의미를 재해석하는 과거와 현재의 만남의 과정을 통해 쓴 뿌리가 치유되고 오늘의 나의 나 됨 즉, 존재의 이유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 때 하지 못했던 말을 뒤늦게 고백해 본다. “해피야! 약속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해.” ‘해피’가 내 마음을 받아준다면 이렇게 말해줄 것 같다. “괜찮아. 이렇게 기억해줘서 고맙고 행복해.”  당신은 화해가 필요한 어떤 아픈 상처 하나를 가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