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좌충우돌 채플린 이야기(34)…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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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 목사/하나님의 성회 시카고교회 부목사

 

채플린 인턴과정 수업을 하는 날. 슈퍼바이저가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있다. 인턴들이 한주간 어떻게 지냈는지 특별하게 나누고 싶은 일이 있는지 묻는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을 나누도록 격려한다. 지난 밤에 온콜 하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인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는 않은지, 힘들지는 않았는지 묻는다. 한주간 수고한 것에 고맙다는 말하며 인턴들의 수고가 병원과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인턴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다. 때로는 부서간의 역할이나 견해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표출되기도 한다. 별 문제될 일이 아니라 여겨지는 일에도 입장차이나 역할 구분이 있기에 어느 사이에 전화나 이메일로 최고책임자(Vice President)에게 보고가 들어간다. 인턴들이 한 일에 대해 다른 부서로부터 받은 피트백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슈퍼바이저는 그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말한다. 또 기분이 어떤지를 묻는다. 상황파악을 위해서, 부서간의 협조를 위해, 병원전체가 한 시스템 안에서 환자를 제대로 돌보기 위한 것으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다. 인턴의 실수로 인해 병원 스텝이나 환자와 관련하여 문제가 생기기를 바라기 않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슈퍼바이저가 보호막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인턴이기 때문에 실수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라 격려도 해준다. 물론 자신들도 여전히 배우는 과정에 있으며 누구든지 실수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수는 실패가 아닌 하나의 배움의 과정이라며 의기소침해진 인턴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준다. 그럼에도 그들의 문화 속 밑바닥에 깔려있는 숨은 의도는 절대적으로 인턴들이나 남들로 인해 자신들이 피해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보내는 시간(Checking in)이 한 시간 정도 소요되기도 한다.

처음엔 본격적인 수업을 바로 시작하지 않고 삶에서 겪는 사소한 일들, 감정들을 나누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시간의 낭비처럼 느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시간이야말로 정말 중요하고 서로를 참으로 안다고 할 수 있는 관계 형성의 과정임을 깨달았다. 시인 김춘수 님의 ‘꽃’ 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름을 불러주고, 삶을 나누고 관계를 형성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진정 소중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해 뭘 얼마나 알고 있는가? 오랫동안 매주 모임을 갖고 만나온 사람의 최대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오늘 어떤 문제가 있어 힘들었는지, 무엇 때문에 우울해 보이는지 알고 있는가? 매일 만나도 인사 정도만 나누며 삶을 나누지 않는 사람이라면 정작 그 사람을 안다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많은 모임들이 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이지만, 정작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나눌 그 한 사람이 존재하는가?

채플린 인턴 한학기, 5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서로의 삶을 나누고, 과거의 기억,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 절망과 희망, 그리고 미래에 대한 목표와 꿈을 나누기에 짧은 기간에 가족 같고, 끈끈한 형제애를 느끼는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요즘 화두의 주인공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은퇴 선언 후 들려오는 여러가지 소식과 음모론에 대해 “친구라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겠지만, 친구가 아니라면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다. ”고 말했다 한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 슬픈 일, 섭섭한 일, 괴로운 일, 아쉬운 일도 많겠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면 인생에는 사실 감사할 일이 제일 많다.  그러니 걱정보다는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되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마지막 일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면 좋겠다. 오늘 누군가에게 “어떻게 살아가고 있어? 기분은 어때?” 물어봐 줄 그 한 사람이 되어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