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좌충우돌 채플린 이야기(7)…안전지대를 떠나 다시 광야 학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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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 목사(하나님의 성회 시카고교회 부목사)

 

2003년 11월, 유학 준비를 위해 교회를 사임했다. 사역지 없는 목사가 되어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해 찾아간 곳은 처음 교육전도사를 했던 교회다. 그날 말씀은 애굽의 왕자에서 한 순간에 살인자요, 도망자요, 잊혀진 존재로 40년을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는 목동으로 산 모세의 이야기였다.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자는 모두 광야 훈련을 거친다.”’는 것이었다. 나를 위한 하나님의 광야학교 입학식! 감격스런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추억이 스쳤다. “이제, 슈퍼바이저가 던진 입학시험은 통과했는데 앞으로 어떤 광야 훈련이 펼쳐질까?”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했다.

“새로운 각오와 삶의 변화가 필요해. 언어라는 것이 잠깐 열심히 공부한다고 몇 달 사이에 실력이 일취월장 달라지진 않잖아. 마지막 손에 쥐고 있는 안전핀을 뽑아 던져야 해.” 일주일 중 6일은 영어가 필요 없는 세상에서 살다가, 수업과 온콜 할 때만 영어를 쓰니 한계를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원어민 인턴들이 부러워. 최고의 실력자가 되리라 했는데, 출발선부터 차이가 많이 벌어져 있었구나! 더 이상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을 때가 아니야.”

안전지대 탈출을 하기 위해 영어로 말하는 직장 사냥에 나섰다. 인터넷 싸이트(indeed)에 이력서를 올려놓고 이곳 저곳 탐방을 했다. 그동안 몰랐던 놀라운 별천지 세계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한번 이력서와 원하는 직종을 입력해 놓으니 하루에 수십개의 이메일이 날라왔다. 그중 관심 있는 곳에 지원을 하니, 아예 연락이 없거나 가끔은 기회에 보자는 연락이 오기도 했고, 어느 곳에선 전화 인터뷰를 하자고도 했다. 예상질문과 답을 만들어 준비했다. 그리고 통과 되면 대면 인터뷰를 하는데, 미리 동영상으로 인터뷰하는 것을 연습했다. 엄청 많은 직종과 직장의 존재가 놀랍지만, 더 놀라운 충격은 그곳에서 원하는 경력이나 자격증이 갖춰지지 않아 내가 갈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사표를 던지기로 결심한 다음 날 토요일 아침, 윌로우크릭교회 행사인 여자들의 아침식사(Women’s Breakfast)에 참여했다. 아침 8시반부터 2시간 동안 모여 다과를 나누면서 강의를 듣고, 같은 테이블에 앉은 참가자들과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회화 연습과 문화 체험을 목적으로 참여했다. 그날 강의 주제는 ‘염려’였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장 말씀이었다.

나의 모든 상황과 필요를 알고 계시다는 하늘 아버지! 염려할 것을 아시고 먼저 위로해 주시는 나의 주님! 이 모든 것을 더해주시기 위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를 요구하시는 성령님! “아멘! 감사합니다.”

약속의 말씀 붙잡고 순종한다고 형통의 대로가 펼쳐진 것은 아니었다. 퇴사 후 일주일 만에 미국 직장에 취직이 되었지만, 기대와 달라 2주 만에 그만 두고 열흘 동안 몸과 영혼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했다. 가사도우미, 보모, 채플린 온콜, 사무직, 우버 드라이버, 교회 파트타임 사역 등을 기웃거렸지만, 결과는 4개월간의 백조 생활이었다. 감사하게도 4개월후엔 더 이상 백조가 아니다. 수많은 도전을 하며 생각한 것이 있다. “100번 거절을 경험하자! 거절은 내 인격이나 존재가아니라 단지 나와 맞지 않을 뿐이야. 의기소침할 필요 없어.” 거절당할 때마다 기록하며 내 삶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갔다. 반면 세미나에 참석하고, 청년수련회 강의하고, 독서삼매경에 빠져도 보고, 반가운 이들과 만나 밥과 차와 삶을 나누며 멋진 추억도 만들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와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의 삶을 살면서, 내게 주신 말씀대로 항아리에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채워주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삶으로 경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