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출생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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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봉(시카고한미상록회장)

사람은 누구나 자의로 선택할 수 없는 환경이 있습니다. 그 환경이 출생환경이 바로 출생환경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좀 더 범위를 확대 적용을 해 보았습니다. 출생환경을 생태환경으로 바꿔서 말입니다. 어제 제가 도착한 농지(農地) 한편으로는 개울물이 흐르고 길가에는 높지 않은 야산(野山)이 있고 야산 정상에서 길이 없어 가시덤불을 헤치고 아래로 내려가면 다 익어가는 콩밭이 펼쳐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넓지 않은 습지와 습지대에 자생한 갈대숲이 콩밭 언저리에 형성되어 있기도 한 곳입니다. 그곳에는 작년 가을에 제가 직접 씨 밤 50파운드를 사서 심어 놓았기 때문에 몇 그루나 싹이 나서 자라고 있는지 확인이 하고 싶어 올 초봄에 갔을 때는 꿩과 칠면조 새끼들만 놀라게 하고 돌아왔는데 어제는 싹이 나서 자라고 있는 밤 싹을 두 세 거 루 발견하고 사진기에 담아 돌아오는 길에 괜스럽게 나의 출생 환경과 내가 선택해 준 밤의 생태환경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출생환경을 저와 비교하며 딴에는 깊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덕분에 구유에서 태어나지는 않았다는 것부터 말입니다. 헤롯왕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예수님으로 의심되는 어린이를 모두 학살당했습니다. 내가심은 밤나무는 싹을 내지 못한 놈이 태반이지만 내가 삶아 먹지는 않았다는 생각!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또 우리들은 묘판을 만들어 또 다른 씨앗을 뿌렸습니다. 더덕씨도 산 마늘씨도, 내가 학명(學名)은 정확하게 모르지만 흔히들 곤잘래라고 하는 씨앗도 함께 뿌렸습니다. 그리고 한 밤이 지나고 아침을 맞았습니다. 아침부터 나는 하늘나라를 확장하려고 하면서 복음의 씨를 뿌릴 방법이 내게 없어 고민스러웠습니다. 이처럼 어제와 오늘 할 일을 생각하며 나는 꽤나 심각했나 봅니다. 교회의 정문을 약 5분 정도의 주행거리를 남겨두고 헤매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가 보이질 않아, 내가 거리 표시판을 읽어보았을 때는 짐작이 가지 않은 낮선 거리였습니다. 이때 제일 먼저 뇌리에 감지되는 단어가, ‘나도 치매!’하고 아찔함으로 전율을 느꼈습니다. 나는 기억에 살아 있는 거리가 나타날 때까지 한참을 달리다가 확인된 지점은 Arlington His 와 14번 길의 교차지점이었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갈까도 생각 했지만 교회를 찾아 갔습니다. 내가 과연 치매인가 순간적인 집착에 홀린 것인가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문제도 실패했습니다. 내가 내린 결론을 믿어도 믿지 않아도 자신이 자아 검진을 했다는 것이고 결론에 대한 가능한 합리화에 빠져 내려진 결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합리화에 빠질 수 있는 환경으로는 나를 그리스도교로 인도하신 목사님이 15년 전 오늘 별세하신 날이기에 부담감이 많기도 했습니다. 그분이 살이 계실 때, 나에게 바라신 것은, 그리스도를 바로 알기를 힘쓰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달아 가고, 그리스도의 헌신에 힘껏 동참하며,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처럼 죽은 자들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셨습니다. 이제 시간이란 수레는 날마다 나에 건강을 앗아 싣고 달려갑니다. 내가 치매를 앓아도 이상할 것이라곤 없습니다. 언제나 현상(現像)은 진리(眞理)만을 나타낸다고 믿어오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진리에서 벗어난 현상(結果)을 본다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보면 현상은 언제나 심은 대로 거두는 진리만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관용도 없고 보편적인 베풂마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진리는 결과를 현상합니다. 어김이 없었습니다. 이 말은 나의 신앙을 앞세워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리되면 대상을 내가 저주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 때문에 조심하고 또 조심합니다. 내일 일을 오늘 알아맞히기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남은 시간의 변화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와의 맺은 나의 미래의 약속이 점점 무거워집니다.  그러나 사랑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 사랑의 씨앗, 가식 없는 사랑의 씨앗을 복음의 바구니에 담아 함께 뿌릴 일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