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태극기와 한반도기

1910

김영언(시카고평통 간사)

 

다음달 2월 평창에 입장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선수들이 태극기를 들지 못한다는 말에 순간 본능적인 거부감이 듭니다.  남북의 단합 사례를 만들고자 추진한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뉴스를 보며 그로 인해 출전기회를 놓칠 남한 선수에 감정이입하게 됩니다. 콩크리트같이 단단해 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북한을 우리 올림픽에 참여시키기 위해 양보의 제스쳐를 보이던 무렵부터 처음으로 꽤나 흔들리는 것을 느낍니다. 아마도 그동안 우리가 북한의 기만전술에 너무나 많이 당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보통 평통으로 불리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대통령에게 통일정책을 건의하고 그 자문에 응하는 헌법기관이자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굳건한 안보와 한미동맹을 바탕 위에 북한과의 대화협력 추진이라는 두 날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취임 이후 미국과 북한 사이의 계속된 갈등 가운데 한반도의 운명 결정자로서 남한의 위상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던중, 문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큰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느껴집니다.

저는 시카고 18기 평통에서 간사로 봉사중입니다. 이러한 문대통령의 통일정책을 동포사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많이 수행해야 하는 직책을 맡은 저로서는 저 스스로가 정부의 정책에 일리가 있는가 늘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일을 감당하는 사람의 언행에 힘이 있을리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 고민의 끝은 내가 근본적으로 남과 북의 통일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하는데 이릅니다.

제가 보기에 현재 남북관계의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의 핵개발이나 주변 국가들이 한국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가 통일을 원하지 않게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수년간 여론조사를 보면 불과 40% 남짓의 국민이 남북통일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통일을 꺼리는 이유로는 경제적 부담을 과반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언젠가부터 통일정책은 돈과 이익을 말합니다. 그것만이 많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박근혜정부는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신경제지도 정책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북한과의 교류로 인해 한국에 경제적으로도 이롭도록 남북관계를 관리하겠다는 정책입니다. 불가피한 현실을 알겠고 그 정책의 취지에 동의하지만 솔직히 마음이 그리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피는 돈보다는 대의에 동의할때 더 뜨겁게 끓기 때문입니다.

6.25 사변으로부터 불과 30년이 지난 1981년 평통출범 당시에는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굳이 설명이 필요없었을 것입니다. 남과 북이 갈라진지 한세대 정도때에만 해도 통일에 대한 정당성과 필요성에는 진보든 보수든 이견을 다는 사람이 극소수였습니다. 한세대가 더 지났습니다. 김대중 노무현정부에서 추진한 북한과의 협력 정책의 결과 핵과 미사일을 보유한 북한이 탄생하지 않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더욱 발전하였고 이제 부자가 몸을 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에 대한 무관심이겠지요. 다른 나라 보듯이 북한을 생각하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니 한반도기를 보는 마음이 1990년대와 달리 불편합니다.

오래전에 원수가 되어버린 두 형제가 있습니다. 형은 크게 돈을 벌고 자녀들을 잘 키워 일가를 이루었는데 반해, 동생은 한때는 자식까지 굶어 죽일 정도로 어렵다가 이웃을 협박하면서 근근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처럼 부모님 기일 제사에 동생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자존심 하나 딸랑 남은 동생이 옆집에 살면서 계속 딴지를 거는 걸 보는 형이 택해야 하는 길은 무엇인가요. 뭔가 결실을 맺으려면 누군가는 양보와 희생을 해야 하는게 세상이치라면, 동생보다는 여유있는 형이 조금 너그러워지는게 상식이 아닐까 합니다. 만일 그 상식이 일리있는 것이라면 가장 중요한 통일방안은 다름아닌 남과 북이 원래 한 형제였다는 것을 우리와 앞으로 올 세대에 계속 상기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