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6070 문화산책

1659

명계웅(문학평론가)

브람스교향곡 제4번

천상병의 시 작품과, 1967년 동백림 간첩혐의 사건 이후의 삶의 일화를 돌이켜 보면, 확실히 천상병은 순수하고, 자신이 시인이란 자부심이 넘치도록 강하고, 고전음악에 대한 사랑과 지식이 전문적인 수준에 이르는 해박함과, 전기고문 전에는 또한 날카로운 비평적 안목으로 그의 문학평론이 월간 ‘현대문학’에도 개재되는 등 장래가 촉망되는 문인으로서 한국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부인 목순옥 씨의 말대로 “남편의 눈물이 보고 싶으면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을 틀기만 하면 될 정도로” 천 시인은 브람스를 좋아했다. 1983년경 목순옥이 남편 천상병과 광복동의 ‘백조’라는 음악 감상실에 함께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부산피난시절에 친했던 음악애호가 한 분을 만났다. 그분은 감상실 아가씨에게 “천 선생님을 위하여 브람스 4번을 좀 틀어 달라‘고 부탁했다. 곡이 흐르기 시작하자 여태 웃고 떠들던 남편이 별안간 마구 우는 것이었다. 어찌나 섧게 우는지 아가씨도 같이 울고, 친구 분도 눈물이 글썽글썽했던 적이 있었다.

브람스(J. Brahms 1833-1897, 64세)의 최후의 교향곡 제4번 e단조 작품 98은, 1885년 브람스가 52세가 되던 해에 작곡되었다. 이 당시, 브람스는 대작곡가로서 명성과 영광에 싸여 있었으나, 또한 이시기는 동시에 ,친한 사람과의 이별, 사별이 계속되어 인생을 깊게 관조하게 된 시기이기도 했다.  이 교향곡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작곡가의 고독, 체념, 우수, 회환이 음조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교향곡 4번이 일명 ‘가을의 교향곡’이라 불리어지는 것은, 작품에 허전한 적막감 같은 늦가을의 애잔한 페이소스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곡 전체가 대위법을 이용한 고색창연한 수법으로 작곡됐고, 제2악장엔, 엣 교회 음계인 프리기아(Phrygian mode) 선법(旋法)이, 제4악장은 바하를 끝으로 퇴색한, 샤콘느(Chaconne)를 원용하고 있다. 브람스의 임종(臨終) 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누가 물었을 때 “그것은 내 생전에 마지막으로 들었던 곡”이라고 대답했는데, 이것이 바로 교향곡 제4번이었다.

황혼의 어슴푸레한 감정과 분위기를 간직한 이 작품은, 인생을 오래 체험한 모든 사람의 가슴에 과거에의 동경을 일깨워 주며, 인생의 괴로움과 외로움을 맛본 사람에겐 위안과 안위(安慰)의 노래가 아닐 수 없다. 브람스 애호가라면 누구나 이 교향곡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공감(共感)이 마음에 깊이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슬픔 속에서 울며 기도하며 호소하는 제1악장, 늦가을 해질 무렵의 고즈넉함이 젖어오는 제 2악장, 슬픔을 애써 떨쳐버리려는 허탈한 웃음의 제3악장, 그리고 31 개의 절묘한 변주곡으로, 늦가을 새 찬 바람에 낙엽은 뒹굴고, 가슴에 스미는 차가운 고적감을 떨쳐버릴 수 없어 끝내 통곡하게 되는 제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천상병 시인은,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아주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감하고, 교향곡 음조에 흐르는 비애감을  자신의 카타르시스로 승화, 교향곡을 들을 때마다 감동의 눈물이 절로 소리 없이 번져나기 시작 했던 것이다.

천상병은 고전음악을 좋아했고, 음악 감상에 대한 지식도 꽤나 있었던 모양인데, 그가 제일 좋아했던 음악이 바로 교향곡4번 이었다. 평소에도 브람스 4번을 들으면 감격하여 금방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부인인 목순옥이 베토벤도 좋은데 왜 브람스를 그렇게 좋아하느냐 물었더니 베토벤은 곡이 너무 쉽고 브람스는 어려우면서도 마음에 와 닿는다고 하면서, 그는 브람스 다음으로 바흐를 좋아했는데, 브람스는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이고 바흐는 ‘천사의 소리’라고 느낌을 말했다고 한다.

사실 브람스 곡은 음악 감상실을 들랑거리던 나의 대학 시절부터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헝가리 무곡은 자주 듣던 신청곡 중의 하나였으며, 특히 교향곡4번의 3악장 알레그로 지오코스는 가끔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도 편집되는 귀에도 낯설지 않은 선율이기는 했지만 내게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브람스의 마지막 교향곡인 제4번은, 그가 52세가 되던 1885년에 작곡이 되었는데 그에게 이 시기는 작곡가로서 명성은 얻었지만 친한 사람들과의 이별, 사별이 계속되어, 고독, 체념, 회한과 우수가 짙게 드리워졌던, 어두웠던 시기이기도 하였다는데, 4번 교향곡이 일명 “가을의 교향곡”이라고 불리어지는 이유도 바로 어딘가 허전한 적막감 같은 늦가을의 애잔한 페이소스가 이 작품 속에 스며있기 때문이다. 또한 브람스는 스승 벌 되는 슈만의 아내, 자신 보다 14살 연상의 클라라 슈만에 깊은 연정을 느끼며 그러나 끝내 우정의 선을 넘지는 않으며 일생 독신으로 지냈는데 클라라가 1896년 세상을 떠나자 그 충격 때문인지 브람스도 이듬해 그녀의 뒤를 따라 64 세로 생을 마감했다. 아마도 브람스 제4번 교향곡의 무겁게 흐르는 짙은 비애감의 음조가, 베를린 간첩사건 누명으로 옥고와 심한 전기고문을 4번씩이나 당한 후유증(後遺症)으로 정신과 육체가 황폐되어 비참한 삶을 살다 결국 브람스와 같은 64세의 나이로 이 세상 소풍을 끝낸 시인 천상병의 심금을 울렸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