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법 칼럼] 고도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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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언 변호사(법무법인 미래/시카고)

아내와 한국에서 연애를 하던 시절, 극단 산울림에서 오랫동안 공연하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본 적이 있습니다. 혹시 독자분중에 이 연극을 보기 전의 저처럼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도’가 높을 고자를 쓰는 한자어인지 생각하는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1952년 아일랜드의 극작가 새뮤얼 베케트가 쓴 연극으로 53년 초연된 이래 20세기 내내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해석으로 수없이 많이 공연된 유명한 작품입니다. 한국에서는 이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던 1969년부터 무려 40년간 임영웅선생이 계속해서 연출하여 무대에 올렸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고도(Godot)’는 극중 사람의 이름입니다. 주인공 두 사람은 한 나무아래에 앉아 본적도 알지도 못하는 고도라는 사람을 이유도 없이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날들이 늘어나면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허탄한 농담이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로 시간을 보냅니다. 고도가 내일은 꼭 찾아올 것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연극은 끝이 나지만 청중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내일도 그들은 고도가 그 다음날 찾아올 거라는 소식을 듣게 될 것임을 말입니다. 고도라 이름붙여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지만, 끝내 고도는 오지 않습니다. 하여 작품 속의 고도는 결국 어떠한 사람이 아닌, 오랫동안 바래온 꿈일 수도, 아니면 종교적인 구원일 수도 있겠습니다. 오지 않을 고도를 막연히 기다리는 주인공의 수수께끼 같은 대사들 때문에 부조리극이라고 불립니다.

저는 요즘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이 된 심정이 듭니다. 연일 믿기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를 기록하는 전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나라. 현직대통령은 본인에 대한 불만을 회피하기 위해 경제를 다시 열어달라는 과격시위를 대놓고 조장하고, 애먼 이민자들에게 화살을 돌리려 신규이민중단 행정명령을 발표하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엉망으로 국가위기사태를 처리하여도 40퍼센트 이상의 지지를 받는 나라. 정책의 실패로 인해 상상도 안 되게 불어난 희생자에 대한 최소한의 미안함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선거승리를 위해서만 움직이는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서 저는 그게 뭐인지는 몰라도 고도를 기다리는 막막함을 느낍니다.

미국이민법을 봐도 3순위 취업이민은 3년의 대기기간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공공혜택수령에 대한 반이민정책을 올 3월부터 시작하면서 이제 이민자들의 크레딧 리포트와 개인정보가 다 드러나는 이민현실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민변호사협회를 포함한 각종 친이민단체와 주요지역 연방법원 등이 애를 쓰고 있지만 막무가내 대통령의 치하에서는 역부족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엎친 데 덮친격으로 코로나가 한풀 꺾이더라도 완전봉쇄의 휴유증으로 많은 이들이 큰 경제적인 고통을 겪게 되겠습니다.

미국에서 잘 사는 것이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아득하고 마치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비즈니스 상황 속에 악전고투하다가 코로나까지 터진 상황에 이민을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간 지인의 소식도 듣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희망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민자 여러분, 기다리던 고도는 결국은 올 것입니다. 조금만 더 버텨주시기 바랍니다. 요즘 믿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시절을 한참 통과하면서 새뮤얼 베케트가 왜 고도를 기다리며를 썼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희망이 없다면 인간은 살수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