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 칼럼 24] 기숙사 생활속의 공동체 의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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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JANG

                                          최유진 (노스파크 대학 생물학 교수)
장재혁 (무디신학대 작곡과 교수)

 

 

필립스 엑시터에서 처음으로 기숙사 건물을 보았을 때,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와, 정말 고풍스러운 건물들이구나!’ 필립스 엑시터의 모든 시설은 전통을 토대로 하되 현대가 어우러져 있는데 유독 기숙사 건물은 설립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엑시터의 교직원에게 들을 수 있었다.

“엑시터의 졸업생들은 여러 방면으로 학교에 기여를 많이 하죠. 그런데 졸업생들은 그들이 졸업한 후에도 기숙사가 본인들이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남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숙사에 대한 기부만은 유독 꺼린답니다.” 기숙사에 대한 졸업생들의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답이었다.

 

흔히 기숙사 생활을 ‘보딩스쿨의 꽃’이라고 말한다. 부모의 품을 떠나 친구들과 함께 살며 새로운 생활환경 속에서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교실에서는 배우기 힘든 것들을 말이다. 하지만 기숙사 생활이 친한 친구들과 여름캠핑을 가는듯한 즐거운 시간이 입학에서 졸업까지 4년 내내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물론 부모의 간섭을 떠나 독립해서 살아본다는 도전이 신나는 것일 수도 있다. 친구들과 한 방, 한 건물을 쓰면서 동거동락하며 쌓아가게 되는 우정도 큰 유익이다. 하지만 그런 이점을 뒤로하고 기숙사 생황이 꽃이 되는 가장 중요한 점은 규율을 지키는 것이다. 규율들을 지켜감으로 인해 그 공동체에 속한 다른 멤버들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깨우치게 된다. 이것이 인성이 성장하게 되는 또 다른 훈련이 된다. 인성이 성장한다는 것은 규율을 지키고 타인을 존중하는 것을 배운다는 뜻이다.

 

규율을 지키고 또 규율을 지키는 것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훈련이 되는 것과 다른 멤버들과 공동체생활을 하는 데에 필요한 것임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 교사들의 서포트가 수반된다. 대부분의 기숙학교의 경우 교사들이 기숙사에 거주하거나 근무하는 것이 의무로 정해져 있다. 필립스 엑시터도 마찬가지로, 기숙사에서 거주하는 교사들은 기숙사 건물 내 교사 전용 아파트에서 생활한다. 대략 학생 열 명당 한 명의 교사가 함께 거주하는데, 큰 기숙사에는 2~4세대 아파트가 딸려 있어 두 명에서 네 명의 교사가, 작은 기숙사에는 한명의 교사가 가족과 함께 거주한다.

이와는 달리 기숙사에 거주하지 않는 교사들은 일주일에 한두번씩은 저녁에 기숙사에서 근무하면서 학생들을 돌본다. 이렇게 교사들은 기숙사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수업 시간을 넘어 생활 속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간다.

 

필립스 엑시터의 기숙사는 건물별로 저마다 전통을 자랑하면 서도 거주하는 교사에 따라 규칙도 조금씩 다르다. 나는 필립스 엑시터에 재직하는 동안 여학생들만 거주하는 메릴 기숙사의 어드바이저로 있었다. 전체 학생 수와 비교해 한국 학생들이 많은 편이었는데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메릴 학생들은 ‘공부벌레’라는 평을 들었다. 선생님들은 우리가 다른 기숙사에 비해 밤 11시 취침 시간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과 아이들 성적이 좋은 것과 관련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정작 학생들 본인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메릴 기숙사의 전통이 되었다.

 

교사들이 학생들과 함께 살면서 자연스럽게 교사들의 가족과도 어울리고 개인적인 상담도 하게 되고 가족처럼 친해진다. 메릴 기숙사의 많은 학생들은 우리 딸을 친동생처럼 귀여워해 주었고 딸은 아직도 종종 메릴 언니들 얘기를 한다. 가끔은 학생들을 교사 아파트에 초대해서 한국 음식도 해 주고 학생들에게 기분전환이 될 만한 시간을 보냈다. 한번은 홍콩에서 온 학생이 자기가 홍콩에서 이탈리안 요리사에게서 배웠다는 해물 파스타를 해서 여러명이 함께 먹었는데,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서 마켓도 함께 가고 요리하는 시간이 참 재미있었다.

집에서 만든 음식으로 함께 식탁에 마주하는 것은 수업시간에 마주하는 것과는 또 다른 친밀한 느낌이 있다. 교사와 학생의 역할에서 벗어나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삶을 공유한다는 느낌. 이런 생활의 공유 역시 인성교육 아닐까?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 (다산북스)의 내용이 참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