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 칼럼 28] 봉사활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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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유진 (노스파크 대학 생물학 교수)
장재혁 (무디신학대 작곡과 교수)

 

봉사활동의 가장 근본이 되는 자세는 ‘나 자신만을 위하지 않는 삶’을 강조하는 ‘Non Sibi’ 정신이어야 한다. 의무적인 봉사활동도 아예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낳겠지만 진정한 봉사활동의 정신은 말 그대로 ‘봉사’이어야 한다. 봉사활동을 통해서 내게 돌아올 ‘이득’을 계산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필립스 엑시터는 수업에서든 학생들의 생활에서든 모든 면에서 이러한 ‘Non Sibi’정신을 가르치고자 한다. 아무리 지식이 뛰어난 학생도 남을 위하는 덕이 없다면 올바른 인재로 성장할 수 없다고 여긴다. 이렇게 인성을 중요시하는 가치는 학생들의 다양한 봉사활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학교의 가장 큰 학생 단체인 ‘에쏘ESSO,, Exeter Student Service Organization’에는 총 70여 개의 클럽이 있는데 대부분 봉사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학생들은 스스로 새로운 클럽을 만들 수 있으

며 이때 관심 있는 교사는 각 클럽의 지도교사로 직접 나설 수 있고 학교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학생들뿐 아니라 교사들도 많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에쏘의 대표적인 봉사활동 단체로 ‘Big Sib Little Sib’을 들 수 있다. 필립스 엑시터는 거의 백인들만 거주하는 뉴햄프셔주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학교 밖을 나서면 백인 외 사람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엑시터 동네에 유색인종이 보이면 당연히 필립스 엑시터 학생이나 그 가족, 또는 학교 방문객이겠거니 할 정도이니 말이다. 이런 환경에서 백인 가정에 입양되어 살아가는 소수계 입양아들은 비록 바람직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다 하더라도 정체성에 대한 고민할 수 있다.

 

Big Sib Little Sib은 이러한 필립스 엑시터 소수계 학생들이 지역 입양아들의 언니, 오빠, 형, 누나로 연대를 맺어 이들을 돌보는 활동을 하는 클럽이다. 이 클럽에는 중국계 학생들이 가장 많았지만, 한국을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지역에서 온 학생들도 다수 참여했다.

필립스 엑시터에서 두 번째 학기를 맞이하던 2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나는 교실에 갔다가 우연히 과학관 1층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붐비는 것을 보았다. 중국 신년 파티라도 열리는 듯 커다란 용머리가 왔다 갔다 하는 가운데 우리 딸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꼬마들도 보였고 내가 아는 한국 학생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이들만 모두 까만 머리이고 어른들은 전부 백인이라는 점이었다. 궁금하던 차에 지나가는 학생에게 사연을 물었더니 다름 아닌 빅 십 리틀 십에서 여는 연례행사라고

했다. 그곳에는 그동안 학교에서 오고 가며 마주쳤던 많은 소수계 학생들이 ‘동생’들과 모여 따뜻한 시간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우리 딸을 ‘리틀 십’으로 등록했고, 그길로 클럽의 어드바이저가 되었다.

 

내가 고급생물학을 가르치기도 한 지나는 이 클럽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지나는 조용조용한 모범생이자 완벽주의적 기질이 있어서 혼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었다. 그런데도 클럽을 잘 이끄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지나, 너 참 대단해. 공부할 시간도 부족할 텐데 이렇게 큰 클럽을 잘 운영하고 있으니 말이야. 게다가 자매를 맺은 동생들도 챙기면서 말이야.”

워낙 진지한 학생이었던 지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선생님! 해야 할 일이 많기는 하지만 정말 즐거워요. 특히 이 클럽에서 만나서 제 동생이 된 가비와 시간을 보낼 때면 공부하면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아요. 제가 가비에게 무엇을 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비가 제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있어요.”

지나의 이 한마디는 내게 사회 봉사에 대해 살아있는 가르침을 주었다.

 

Big Sib Little Sib은 생긴 지 몇 년 만에 크게 성장했다. 필립스 엑시터의 소수 민족 출신 학생들은 모두 이 클럽에서 언니, 오빠, 형, 누나로 활동하기를 원하는 것일까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인기가 높아서 나중에는 한 명의 동생에 두 명의 언니 오빠가 맺어지기도 했다. 2011년에는 이 근방에 이렇게 많은 외국인 입양아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큰 클럽이 되어, 100명 이상의 지역 입양아들이 필립스 엑시터의 학생들과 형제자매 결연을 맺었다.

 

나는 이 클럽의 어드바이저로 활동하면서 여러 가지 감격스러운 모습을 목격했다. 특히 처음에Big Sib Little Sib의 동생으로 이곳을 방문했던 지역의 아이가 자라서 필립스 엑시터의 재학생으로 이 클럽의 언니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다.

 

이외에도 남을 섬기는 봉사의 근본된 마음으로 활동하는 다른 예들을 다음 글에서 얘기하고자 한다.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 (다산북스)의 내용이 참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