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 칼럼 30] 교사에서 선생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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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노스파크 대학 생물학 교수), 장재혁 (무디신학대 작곡과 교수)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서 교사는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 학생은 내용을 배우는 사람으로서의 관계가 전부는 아니다. 단지 이런 관계 뿐이라면 학생들은 인터넷이나 우수한 교육 플랫폼을 통해 이미 정리되어 있는 내용을 습득하기만 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학생과 교사가 직접 만나서 이루어지는 수업이든,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는 온라인 수업이든 근본적으로 교육은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배움의 과정이다. 그리고 이것은 교사와 학생이 상호 믿음을 바탕으로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때

더 큰 성과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필자 부부가 필립스 엑시터에서 처음 학생을 가르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면 내용적인 측면에서 수업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다. 물론 교사로서 교과과정에 대한 이해가 기

본적으로 튼튼해야 한다. 하지만 필립스 엑시터에서, 그리고 이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지금 드는 생각은 교사라면 무엇보다도 ‘학생과의 관계’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칼럼을 통해서 하크네스 테이블에서 생기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형성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다. 학생들이 토론 수업에서 자신의 생각을 어려워하지 않고 발표 할 수 있고 동시에 급우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듣고 이러한 의견들을 모아가며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하크네스 토론수업의 가치라고 했다. 이러한 환경이 가능한 것은 교사와 학생간에 인격적인 그리고 인성적인 관계형성이 우선하기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토론수업의 창의성, 그리고 교육 전반의 창의성은 인성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서로 존중할 때 생기는 건강환 관계에서 시작된다. 잘 가르치는 교사, 능력있는 교수가 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훌륭한 ‘선생님’이 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교사의 능력 뿐 아니라 학생들을 배려하고 그들의 성장을 위해 도울 수 있어야 하고 학생들이 인성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필립스 엑시터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대학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교사가 아닌 ‘선생님’으로 다가가기를 원했다.

내가 캘리포니아 뱁티스트 대학에 재직 중일 때였다. 한번은 대학생인데도 생물학 공부를 아직 제대로 해 본 적이 없고 수학 공포증이 있던 한 학생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교수님이 가르치는 이 수업이 저한테는 너무 어렵지만 교수님처럼 학생을 격려하고 돕고자 하는 분은 처음이었어요. 성적이 낮게 나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어요.” 내게 먼저 다가와 그런 고백을 들려준 학생에게 나는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학생은 성적에서도 점점 변화를 나타내게 되었다.

장 선생도 학창 시절, 선생님이 보여 준 관심과 애정이 그 어떤 가르침보다도 자신의 꿈을 키워 주고 자신감을 길러 주는 데 기여했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때 만난 물상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셨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지 설명해 볼 사람?’ 선생님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상상력과 논리력을 자극하셨고 학생들은 나름대로 답을 생각해 발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장 선생을 비롯한 급우들이 틀린 대답을 해도 이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셨고, 좋은 대답을 한 학생은 격려하셨기 때문이다. 이래서 물상은 장 선생이 제일 좋아한 수업이었다.

이때 물상 선생님이 하셨던 수업은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답변을 찾도록 하는 ‘소크라테스식 교수법’이면서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에서 이루어지는 ‘하크네스 수업’의 원리와도 상통하는 것이다.

또 중학교 졸업 후 겨울 방학에 만난 작곡 선생님은 장 선생이 작곡 공부를 넘어 작곡가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 레슨을 가면 처음 들어 보는 신기한 음악, 난해한 음악을 들려주신 후에 ‘뭘 느꼈니?’ ‘대체 작곡가가 무엇을 표현하려 한 것 같니?’ ‘이것을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니? 등의 질문을 던지셨다. 장 선생은 이를 통해 작곡가가 평생 고민해야 할 도전과 창의성을 배웠다.

장 선생이 물상 선생님과 작곡 선생님을 통해서 배운 것은 단순히 학업적인 부분이 아니다. 선생님과 학생이 신뢰할 수 있는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때 학생들은 더욱 크게 성장한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 것이다. 이렇게 학생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교사는 학생들에 대한 관심을 교실로만 국한시키지 않고 교실 밖으로 확장시킨다. 그래서 학생들이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는지, 학교 밖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졸업 후에는 어떤 꿈을 가지고 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지에 대해 학생들과 교감을 나누고자 한다. 교사가이러한 노력으로 학생에게 다가갈 때 학생들은 교사를 강단에서 가르치는 사람으로만 보지 않고 ‘선생님’으로 여기게 된다.

내가 대학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대학에 진학한 보통 학생들이었지만, 나이, 경제적 배경, 출신 지역과 문화도 다양한 학생들이 꽤 있었다. 오빠가 암으로

숨지게 되어 수업을 여러 번 빠질 수밖에 없다는 40대 학생에게 나는 1~2주 동안 집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했고 결석에 대한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딸의 공립학교는 휴교하지만 학생인 엄마의 사립대학은 휴교하지 않는 날, 그 엄마가 딸을 데리고 수업에 들어오도록 했다. 밤새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험 공부를 못 했다는 학생에게 그 시험에서 특별한 배려를 해 줄 수는 없지만 앞으로의 아르바이트 스케줄을 바꿀 수 있도록 사장과 직접 상의하겠다고 자청했다. 배움에 대한 욕구와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배움은 언제, 어느 곳에서든 이루어질 수 있다. 교육은 그런 개인들의 관계이자 만남이다.

지식을 전하고 기능을 연마하는 교육이 더욱 탄력받을 수 있도록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중요하다. 를

그래서 학업이 학생 혼자만의 고달픈 길에 머무르지 않고, 옆에서 박수 치고 응원하는 교사와 더불어 가는 길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이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라 믿는다.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 (다산북스)의 내용이 참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