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 칼럼 7] 하크네스 테이블 – 새로운 수업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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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노스파크 대학 생물학 교수

장재혁 무디신학대 작곡과 교수

학교에서 ‘인성 교육을 한다’라고 하면 주로 따로 구별된 커리큘럼을 도입한다. 마치 인성에 관련된 과목을 다른 교과목과 함께 다루듯이 말이다. 예를 들어 많은 미국의 초/중등학교에서는 우리가 예전에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도덕’ 시간이 따로 있었듯 “Second Step”이라는 커리큘럼을 배운다. 이번 주에는 ‘화가 날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 다음 주에는 ‘친구가 슬퍼하면 어떻게 도와줄까’ 이런 식이다. 물론 교사에 따라 Second Step 에서 배운 내용들을 아이들이 여러 상황에 잘 적용해서 가르쳐 주는 경우가 많고 집에서 부모도 이 내용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적용하도록 권장한다. 즉, 인성교육을 수학, 과학, 인성… 이렇게 하나의 과목으로 다루는 개념이다

 

학교에서 따로 구별된 커리큘럼을 도입하지 않고도 교육의 방식을 통해 인성 교육을 할 수도 있을까? 우리가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에서 경험한 협력식 토론수업인 ‘하크네스 Harkness’가 그 대답이다.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의 꽃이라고도 불리우는 ‘하크네스’ 또는 ‘하크네스 테이블” 교육법은 고교에 적용된 토론수업이지만 대학의 세미나식 교육과 흡사한 점이 많다. 하크네스 토론에서는 학생들이 예습을 해 온 내용을 바탕으로 발표와 토론, 대화를 통해 수업을 진행하는 방법이며,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이 아니라 토론을 돕는 역할을 한다. 하크네스 교육법은 교사와 모든 학생을 동등한 자리에 놓고 학생들이 서로 대화하며 교류하도록, 경쟁하기 보다는 협력하도록 한다. 이렇게 협력을 강조하는 하크네스 교육법은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에서 시작되었다.

 

하크네스는 이 학교가 시작되면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원래 필립스 엑시터의 수업 방식도 다른 학교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서른 명 안팎의 아이들이 줄지어 배치된 책상에 각각 떨어져 앉아 있고, 교사는 홀로 칠판 앞에 서서 수업을 했다. 교사는 주로 강의식 수업을 했고 암기 위주의 숙제가 많았으며 학생들은 교사가 설명하는 것을 열심히 노트하고 가끔 교사가 지적하면 답변하는 매우 조용한 수업 이었다. 권위적 분위기의 지식 전달형 수업말이다. 이런 방식의 수업은 1781년 개교 이래로 150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다. 1931년 에드워드 하크네스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기 전까지.

 

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에드워드 하크네스는 사업보다 사회활동과 기부에 더 관심이 많았다. 1929년, 그는 필립스 엑시터에 이런 제안을 건넸다. 학교에서 획기적인 교육 방식을 고안해 내기만 하면,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데 필요한 모든 비용을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것이었다. 에드워드 하크네스는 근본적인 혁신을 원했다. 친구에게 묘사한 그 새로운 교육법의 모습이다: “열 명 정도의 학생이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지. 암송이 아니라 토론 말일세.”

 

그의 뜻을 받아들인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는 적극적으로 이 혁신에 임했고 하스네스라는 토론수업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 이후 수업과 교육의 수준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자신만을 위하지 않기로 한, 선함을 함께 가르치기로 한’ 설립 이념이 바로 이 수업 방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는 하크네스 테이블 교육으로 더욱 유명해졌고 적지 않은 사립고교에서 이 하크네스 수업방식을 도입하게 된다.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에서는 ‘모든’ 과목이 학생들이 토론으로 수업을 이끌어 가는 하크네스 방법으로 이루어 진다. 견해가 달라 토론이 예상되는 인문 과목은 물론이고 비교적 답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 수학이나 과학 수업도, 그리고 예술 과목도 예외가 아니다. 필자 부부가 필립스 엑시터에서 처음으로 하크네스 수업을 했었던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답을 가르쳐주고 그 과정을 풀어주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토론을 통해서 과정과 도착점 모두 겪게하는 수업. 참 신선한 수업이었지만 교사로서는 오히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방식이기에 힘든 수업이기도 하다. 그 곳에서의 첫 학기는 우리에게는 모험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4년, 그리고 그 이후 강단에서의 시간이 쌓여가면 갈수록 느끼는 것은 이렇게 협력적이고 주체적인 배움이야말로 살아있는 배움이라는 사실이다.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 (다산북스)의 내용이 참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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