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 칼럼 8] 하크네스 테이블 – 2 교육은 결과가 아닌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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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노스파크 대학 생물학 교수)

장재혁 (무디신학대 작곡과 교수)

 

지난 십 여 년간 미국 교육에서 가장 ‘핫’한 교육법 중 하나는 ‘Flipped Classroom’ 즉 강의와 숙제를 맞바꾼 수업이다. 학생들에게 녹화된 강의를 숙제로 미리 듣게 하고, 수업 시간에는 문제 풀이, 프로젝트 (포스터 만들기 등), 토론 등의 활동을 한다. 그런데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에서 이미 거의 100년 전부터 이런 방식의 수업을 시작했다. 바로 ‘하크네스 테이블’이다.

 

‘하크네스 테이블’ 또는 ‘하크네스’ 교육법의 특징은 수업에 토외될 내용에 대해서 미리 공부해 온 후 수업시간에는 학생들끼리 서로 질문하고 답하고 토론으로 수업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교사가 칠판에 쓰고 설명하는 그런 강의식이 아니라 순전히 학생들에 의해서 수업이 이루어진다. 학생들끼리 소통해가는 수업인만큼 하크네스 수업은 12명에서 14명이 둘러 앉을 수 있는 타원형의 큰 책상에서 이루어진다. 개인 책상으로 줄지어 배치된 대부분의 교실과는 구조부터 다르다. 교사도 그 테이블에 학생과 함께 앉는다. 하크네스 수업이 혁신을 넘어 혁명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교사와 학생이 함께 둘러앉아 눈높이를 맞추게 되었기 때문도 아니고, 학생들이 말을 많이 하게 되었기 때문도 아니다. 학생이 교사에게 이끌려가는 수동적 존재에서 배움의 주체, 생각의 주체로 바뀌었다는 것이 진짜 이유다. 교사가 설명하는 내용을 이해하고 외우는 방식이 아니라 토론을 위해 학생 스스로 미리 공부해온 내용을 다른 학생들과 함께 토론해가면서 답을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학생이 수업의 주체가 된다.

 

하크네스는 대학 수준의 수업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내용으로 보자면 수업에 따라 고등학교 교제를 넘어서는 내용이 다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기본적으로 하크네스도 어디까지나 교제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수업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배움이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토론의 수준이 높다는 점에서, 하크네스가 대학 수준의 수업이라는 것은 아주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역사학자이자 퓰리처상 수상자, 그리고 케네디 행정부의 핵심멤버였던 아서 슐레싱어 (Arthur Schlesinger Jr.)는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하버드에서 수학했고 하버드 역사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는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와 하버드 대학을 비교하며 이렇게 회고한 바 있다. “내게는 하버드에서의 수업들이 너무도 쉬웠다. 내 사고력은 필립스 엑시터에서 이미 훈련을 마쳤다.”

아서 슐레싱어는 하크네스가 막 도입되던 시기에 필립스 엑시터의 학생이었는데 훗날 그는 하

크네스가 가져온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크네스 테이블에 앉은 이후, 교육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 되었다.” 토론을 통한 수업방식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단적으로 설명하는 말이다.

 

하크네스가 학생들에게 더 잘 습득하게 하는 교육법이기 때문에 물론 주시할 만 하다. 하지만 그 바탕에 깔려 있는 협력의 정신, 배려의 정신, 인성 교육을 주목해야 한다. 하크네스를 통해 수업은 더 이상 이미 정해진 정답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답을 찾아가는 협력의 과정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단순히 정답을 받아들이는 대신 토론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한다는 점에서 하크네스는 유대인의 교육법 하브루타를 떠올리게 한다. 하브루타는 교사가 주제를 주면 두 명의 학생들이 짝을 지어 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같은 팀에 있는 사람과는 협력을 하게 되지만 상대방과 논쟁해서 이겨야 한다. 하지만 하크네스는 하브루타와는 다르다. 하크네스는 ‘논쟁’과 ‘경쟁’의 성격이 강한 하브루타보다는 좀 더 ‘대화’ 또는 ‘협력’의 특성이 강하다.

 

하크네스는 이렇게 학생 주체적인 (student-centered) 배움의 방법일 뿐 아니라, 학생 상호 간의 협력적인 (collaborative) 배움의 방법이다. 모든 수업에서 서로 협력하는 방법을 배우고 연습하는 과정 자체가 인성 교육이다.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 (다산북스)의 내용이 참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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