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 25] 베드로가 졸지에 사탄이 되었던 사연, 남의 일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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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기록되어 전해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자세히 뜯어보면 가끔 그 말투가 너무 걸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위선적 종교지도자들에게 ‘뱀 새끼’라는 욕설 퍼붓기를 서슴지 않으셨다(마 12:34). 종교로 인해 생긴 권력을 이용해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지만 약한 사람들 괴롭히며 오히려 피 흘리는 데 발 빠른 위선자들을 생각하면 사실 그보다 더 과한 말을 쏟아 부으셨다 하더라도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에게는 오히려 속이 시원한 일이다. 하지만 당신의 가장 가까운 제자에게 ‘마귀’라 부르며 ‘물러가라’고 언성을 높이신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빌립보 가이사랴에서의 일이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막 8:31-33). 이것은 누가 봐도 많이 심한 책망이었다. ‘네 속에 있는 마귀가 나가기를 원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직설적으로 베드로에게 대놓고 ‘마귀’라 불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던 것 같다. 예수의 사역 중 자신에게 가장 힘들었던 일은 어떤 ‘메시아’(=그리스도)가 되느냐 하는 이슈를 중심으로 발생한 내적 갈등이었다. 당시 대중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정치-경제적 해방을 가져올 군사적 지도자였다. 사해의 쿰란 공동체는 그 외에도, ‘거룩한 대제사장으로서의 메시아’를 고대했다. 그러나 당시 문헌 어디에서도 십자가에 달려 죄를 위해 죽는 메시아 개념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사야서의 고난 받는 종(42:1-4, 53장)과 스가랴서의 나귀 타고 오는 평화의 왕(9:9-10)으로서의 메시아가 되어야 함을 알고 계셨다. 누구도 이것을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움직이던 제자들조차…

예수님 자신도 한 인간으로서 일반 대중이 기대하는 메시아가 되어야 한다는 내부의 목소리와 싸우셔야 했다. 사역 초기에 이겨내야 했던 시험은 모두 경제, 정치, 종교적 기적의 메시아가 되어야 한다는 사탄의 꼬임이었다(마 4:1-10). 이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마 4:10a)고 외치면서 하나님 말씀을 인용하여 그 시험을 이겨 내셨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시점에 베드로가 같은 시험을 걸어온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를 정확하게 알아보아 그가 그리스도임을 고백했다(막 8:29). 그래서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비로소 메시아인 자신이 고난 받고 죽어야 함을 힘주어 가르치기 시작했다(막 8:31-32). 이러한 메시아관을 정면으로 맞받아치고 나온 것은 다름 아니고 바로 조금 전에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정답 고백을 했던 베드로였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고 죽는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강변이었다(막 8:32). 그 생각 속에 사역 초기 예수를 시험했던 사탄과 똑같은 유혹이 들어있었다. 예수는 사탄과의 힘든 싸움을 그대로 상기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있는 그대로 외쳤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이 마귀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한 번 더 예수의 내부 적이 되어 그를 괴롭힐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끝내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셨다. 세상이 워낙 수상하다 보니, 지금도 예수님을 정치, 경제적 메시아로 축소시키려는 베드로의 눈이 여러 곳에서 희번덕거려 불안하다. 사순절이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묵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