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 35] 탈레반, 너희 그러는 것 아니다, 진짜 남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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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요즘 탈레반이 저지르는 악마적 만행, 특히 여성들에 대한 잔혹한 행태들이 소름 끼치게 끔찍하다.

그래서 오늘은 종종 여성의 복종을 강요하는데 잘못 사용되는 신약성경의 에베소서 5:22를 되짚어봐야 할 것 같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당장에 보기에는 탈레반의 여성 비하적 관점이 틀리지 않아 보이게 만드는 구절이다. 그러나 조금 어렵지만 자세히 뜯어봐야 이 말씀의 진가(眞價)가 제대로 살아난다.

사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은 에베소서의 환경을 구성하는 일세기 그리스-로마 사회에서는 전혀 어색함 없어 지극히 당연히 여겨지던 규범이다. 따라서 그것 자체가 당시의 입장에서는 크게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에베소서 본문에서는 이 ‘복종’의 개념이 전후 내용의 문맥을 놓고 보면 전혀 다른 의미로 승화된다. 그리스어 원문을 살펴보면 이 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리스 원문 문장의 구조와 단어 사용을 최대한 반영하는 방식으로 직역해 본다. “21그리스도의 경외 안에서 서로에게 복종하라. 22아내들은 그리스도에게 하듯 남편에게…”(필자 私譯).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22절과 24절, 두 번에 걸쳐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원문을 살펴보면 이 두 경우 사실상 동사가 없다. 즉 두 절 모두 동사가 생략되었지만 우리 성경이 번역을 위해 ‘복종하라’는 동사를 삽입한 것이다. ‘아내들’의 행위의 대상으로 ‘남편들’이 나오지만 ‘복종하다’의 뜻인 동사 ‘휘포타쏘’(ὑποτάσσω)는 아무리 찾아봐도 거기에 없다. 그대로 직역을 하면 22절의 경우, “아내들은 자기 남편들에게 그리스도께 하듯…”이 문장의 전부이고 24절 하반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아내들은 모든 일에 남편들에게..”가 배열된 문장의 전부다. 그러면 묘하게 생략된 이 동사는 어디에서 끌어와야 할까? 앞의 21절이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즉 22절에서 아내의 복종은 21절에서 언급하는 ‘상호간의 복종’의 한 부분이다. 남편도 아내에게 복종하는 관계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의도한 22절의 동사 생략은 정말 ‘의도적’이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은 관습이 된 그리스-로마세계 위계질서의 무심(無心)한 표현의 되풀이다. 그러나 여기서 아내의 복종은 21절이 정의한 대로 남편도 아내에게 ‘복종’하는 복음의 새 질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의미 깊은 사랑의 복종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복종하면서 그 조건 아래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즉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갈 5:13) 하는 것을 전제한 여성의 복종이다.

그래서 남편은 오히려 노예가 주인을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듯이(빌 2:8) 아내를 위해 죽을 것을 명령 받는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5). 어찌 보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태도만 보이면 되지만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그리스도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는 노예적 복종을 해야 한다. 사실은 이것이 초대 교회 복음의 진수다. 그때의 세례 선언문이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여성을 위해 죽는 남성이어야 참 남자인데 여성을 잔혹하게 매질하고 죽이는 탈레반 인간 쓰레기들이 역겨워서 하는 말이다. 탈레반, 너희 그러는 것 아니다!